"큰 산불이 났는데도 재난 문자 한통 받지 못했습니다."
건조주의보 속 발생한 강릉 산불로 3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지만 국가 재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7일 국민안전처, 강원도, 강릉시 등에 따르면 강릉산불은 전날 오후 3시 32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노루목이산 정상 부근에서 발생했다. 화재 발생 1시간 32분 전 이 지역을 비롯한 강원도 6개 시·군에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불은 강풍을 타고 성산면 관음·위촌리 마을 등지로 순식간에 번져 성산면 가옥 18동, 강릉시 홍제동 가옥 12동 등 30동을 집어삼켰다. 주민 311명은 최소한의 생필품을 챙길 겨를도 없이 성산·강릉초등학교 등으로 긴급 대피했고, 동해고속도로 남강릉 나들목∼강릉분기점 구간 양방향과 동해 나들목∼옥계 나들목 강릉 방면이 한때 전면 통제됐다.
강릉산불은 이틀 만인 7일 잡혔지만 이 과정에서 재난 당국의 안전불감증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는 어떤 재난 문자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오후 4시 4분 강원도 고성·동해·삼척·속초·양양 등 6개 지역에 '오늘 16시 강원도 삼척, 동해, 양양, 고성, 속초지역 건조경보, 입산시 화기소지 및 폐기물 소각금지 등 화재 주의하세요'라고 보낸 재난 문자가 고작이었다. 국민들은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자 했지만 국민안전처·산림청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홍보용 글 일색이었다.
당시 산불은 발화지점에저 6~7km 떨어진 곳에 민가가 위치한 데다 시속 15m의 강풍이 시내 쪽으로 불던 상황. 그러나 강원도·강릉시·한국도로공사 등 현장 상황을 제일 잘 아는 기관 조차도 안전처에 긴급 문자 발송을 요청하지 않았다. 국민안전처는 "현장 상황을 제일 잘 아는 기관의 요청이 없었다", 해당 지자체는 "100ha이상의 대형산불이 아니다" "주민대피령을 내렸고, 차량 통제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등의 이유를 들며 면피에 급급해 하고 있다.
그러나 강릉시가 주민대피명령을 내린 시각이 화재 발생 2시간 30분 뒤인 오후 6시 이고, 실제 대피가 이뤄진 시각은 6시 40분 임을 고려할 때 긴급재난문자전송서비스(CBS) 시스템을 갖춘 국민안전처가 먼저 조치를 취했다면 피해와 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 SNS나 포털에 실시간으로 올라온 글을 보면 당시 도심 주민들은 산불 소식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알았다는 주민이 많았다. 한 주민은 "불바다 되기 직전 문자를 받을 수 있을까"라면서 허탈해하기도 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현장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지자체나 산림청 등에서 대응 수위를 판단한다"면서 "강릉산불의 경우 강릉시에서 대피 주민에게만 알리는 것으로 판단하고 안전처에 재난 문자 발송을 요청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처가 직접 개입하면 현장 대응에 애로가 있을 수 있다"면서 "가급적 현장에 맡기고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대피명령의 헛점도 발견됐다. 매일경제신문 취재 결과 강릉시에서 취한 주민대피명령은 모든 마을 주민이 아닌 마을 이장을 통해 간접 전달됐다. 강릉시 관계자는 "주민대피명령은 각 면사무소를 통해 이장에게 전달됐고, 이장은 마을방송을 통해 주민에게 알렸다"면서 "주민 핸드폰 번호는 개인정보여서 시에게 일제히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에 대비해 임진강 하류 지역 주민에게 긴급 문자 서비스를 보내는 것 처럼 산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긴급 문자를 발송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화재 피해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성산초등학교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샌 주민들은 "가재도구 등 모든게 사라져 앞으로 살 날이 걱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재민들은 선거 유세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이달 첫 주말, 강원 경북 등에서 16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경북 상주에서는 산불로 인해 여성 등산객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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