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속됐다. 다른남자만나지마라"...'그'의 메시지 이후 시작된 악몽
"너무 무서웠어요. 보복할까봐 그저 두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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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데이트 폭력이 찍힌 CCTV화면/사진=MBN |
취재진이 (전화로) 만난 일명 '부산 데이트폭력' 피해자 A씨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SNS에 공개된 사진만 봐도 당시 얼마나 심각한 폭행을 당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씨가 옷이 반 쯤 벗겨친 채로 끌려다니는 모습이 공개되자 대중은 공분했습니다. 하지만 A씨를 더욱 공포에 떨게 만든 건 '폭력'보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었습니다. ‘이게(체포가) 끝이 아니구나. 내가 보복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든 건 지난밤 자정쯤 경찰에 체포된 전 남자친구, 피의자 B씨의 SNS 메시지가 온 뒤부터였습니다.
과연,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가 있을까?
경찰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의 진술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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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데이트 폭력 사건일지/사진=MBN |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B씨가 체포된 시각은 지난 21일 밤 11시 40분쯤입니다. 체포된 뒤 지구대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은 B씨는 22일 새벽 3시쯤 경찰서 당직팀으로 인계됐고, 경찰서에서 본격적으로 조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지구대에서 간단한 인적사항 조사와 사건 개요를 파악한 뒤 관할 경찰서 당직팀으로 인계되어 조사를 받고 조서를 쓰게 됩니다. ) 즉, B씨가 사건 현장에서 체포되어 지구대를 거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까지 약 5시간 동안 여러 차례 피해자 A씨에게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게다가 처음으로 B씨가 A씨에게 연락한 시간은 22일 0시 30분쯤. 체포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또 메시지 내용에 "전화안받고머해"가 있었던 점에 비춰 체포된 이후 A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점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B씨는 “내구속됐디.(사실상 체포된 것) 다른남자만나지마리ㅡㅡ”라며 자신의 상황을 계속해서 알렸습니다. 결국 피해자 A씨는 22일 오후 8시 50분쯤 본인의 SNS에 공포스런 피의자의 메시지를 공개합니다.
심지어 A씨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담당 경찰에게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조서 쓸 때 부모님과 연락을 해야 해서 경찰이 (휴대폰을) 뺏을 수 없었다"고 A씨에게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신 경찰은 A씨에게 112에 즉시 신고가 가능하고 피해자의 위치를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제공했습니다.
증거인멸, 범행과 연관있어야 휴대폰 압수 가능..증거인멸과 정말 무관할까?
현행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 제9조 3항에 따르면 "죄증인멸 등 수사에 지장이 있다고 우려되는 물건 또는 범죄의 도구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은 피의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이를 '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피의자가 지구대나 경찰서에 있는 유치장에 들어가있을 때는 소지품을 '경찰'이 보관하지만, 조사를 받을 때 이를 경찰이 보관할 수 있는 강제 규정은 없습니다.
담당 경찰도 "조서 작성시(즉, 유치장 밖에 나왔을 때) 또는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변호인 또는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핸드폰을 달라고 할 때 핸드폰을 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핸드폰이 범행에 이용된 '몰카범'이나, 강력범죄의 공범이 있는 등 범죄와 직접적 연관이 있을 때는 핸드폰을 계속 보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피의자의 요청이 있을 때는 돌려줄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보낸 메시지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도와줄꺼지**야?" "전화안받고머해" "잘말해줄꺼제" 등 본인에게 유리한 진술을 피해자에게 강요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납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겼을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피해자의 진술은 수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경찰은 올바른 수사를 위해서라도 피의자 B씨가 임의로 피해자에게 접촉하려는 시도는 방지했어야 마땅합니다. 일반적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외부 연락을 요청할 경우 본인의 휴대전화 대신 경찰서 유선전화를 이용하게끔 안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B씨가 A씨에게 연락하는 줄 알았다면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면서도 "피의자가 피해자를 달래는 식이었고, 피의자가 경찰 몰래 연락한다면 이를 하나하나 감시할 수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데이트폭력'이란 범죄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피의자 B씨가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한 데는 "신고가 되어 내가 잡혀가도 멀리서도 너를 통제할 수 있다. 결국에는 다시금 너에게 관계를 맺겠다"라는 심리가 담겨있다고 범죄 심리전문가는 분석했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어 "이 사건의 본질은 잘 아는 두 사람 사이에 피해자를 괴롭히고 협박하는 것이다. 경찰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피의자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면서 피해자에게 연락하면 안 된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등 피해자에 대한 고려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데이트폭력은 애정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입니다. 상대방에게 가하는 폭력은 보통 '애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가해집니다. 반면 지나가던 행인 간의 폭력은 2차 피해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연락처는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이트폭력'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2차 피해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 교수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범죄 전·후에 이루어지는 스토킹, 신변위협, 감시하는 행위를 각각 범죄로 취급해야 한다”라며 “이 범죄들이 개별적으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 이래야만 무서워서 2차 범죄를 하지 못한다"며 데이트 폭력에 대한 법 개정 필요성을
이전에도 데이트폭력을 당해 신고한 적 있다고 피해자 A씨는 털어놓았습니다. B씨가 경찰에 체포됐지만 A씨는 “B가 유치장에 있을 때도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게 힘들었다. 형사에게 전화해서 ‘B는 유치장에 있죠?’라고 재차 확인했는데도 나가기가 무서웠다”고 전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엄해림 기자/ 김평화 김태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