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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이용원에서 20년 째 영업 중인 여성 최초 이발사 이덕훈 씨(84)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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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이용원 전경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내가 7살 때 가족들 모두가 북만주로 건너갔었어. 아버지가 최전방 부대 이발 담당관으로 차출됐기 때문이지. 혹시 마루타 부대라고 들어봤나. 딱 그 부대였지. 거기서 11살까지 살다가 8·15 광복으로 서울로 돌아왔어. 그 때 왕십리 부근으로 자리 잡았지. 그러다 또 6·25가 터져서 고향 홍성에 잠깐 내려가 있다가 수복된 후 상경해 60년째 이발하는 중이야. 감도 안 잡히는 세월이지? (웃음)
―당시엔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지 않았나.
▷난 맏아들이나 다름없었어. 5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나서 동생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쳤지. 19살 때 아버지가 다니던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감사원 이발소에서 일을 도왔어. 물도 나르고 머리칼도 치우고. 그러다 1958년 이용사 면허시험에 붙었지. 총 69명 중 31명이 합격했는데 그 중 유일한 여자였어. 그래서 최초의 여성 이발사가 됐지.
―최초 여성 이발사로서 삶이 순탄했나.
▷순탄했다면 거짓말이지. 지금처럼 미장원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이발소에는 대부분 남자들이었지. 하지만 그땐 그런거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어. 아들 넷 건사하고 동생들까지 보살피려니 닥치는대로 일했지. 남편 사업부도 맞은 후엔 시부모까지 모시고 살았어.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 그런데도 내가 살아남은 건 오직 '실력' 때문이야. 손님들한테 인정받는 낙으로 버틴거지. 나처럼 이발 꼼꼼하게 하는 사람도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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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을 시작한 이덕훈 이발사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갑자기 의자가 '툭!'하고 눕혀진다. 요즘 미용실에서 볼 수 없는 직관적인 기능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발사는 "우습냐? 요즘 것들은 이런 거 본 적 없지" 하며 농담을 던진다.
―전통 이발을 처음 본다. 얼굴 면도 서비스도 포함되는지 몰랐다.
▷이게 왜 서비스야? 당연한거지. 얼굴 털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마·인중·구레나룻까지 단정해야 진짜 신사야. 하긴 남자들은 목욕탕에서 아직 해주긴 하는데 여자들은 거의 본 적 없을거다.
면도가 끝나면 개수대로 이동한다. 이발사는 샴푸를 묻히고 수도꼭지를 틀어 투박하게 머리를 감긴다. 마치 아들 등목해주는 어머니처럼 정겹다. 손님은 익숙한 듯 등을 굽히고 비누칠을 돕는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간지러운 두피 마사지를 받으며 자랐던 기자로서는 생소하기만 하다. 샴푸를 마치고 다시 자리로 이동해 머리를 말린다. 스틸 재질 드라이기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이발소 안을 가득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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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 된 철제 드라이기와 친정 아버지께 물려받은 커트(일명 바리깡) 기계.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이건 15년밖에 안 됐어. 저기 보이는 커트(일명 바리깡) 기계는 우리 아버지가 쓰시다 물려주신 건데 100년도 넘은 거야. 지금은 쓸 수 없어서 저렇게 명패처럼 걸어놔. 가끔 보면서 떠나간 가족들 생각해.
―60년 이발 인생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모든 손님이 기억에 남아. 가게에 처음 들어오는 눈빛부터 말투·생김새까지. 머리를 잘 다듬어주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해.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성격까지 파악하려고 애써.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고 정주영 현대 회장과 김두한 씨지. 정주영 회장이 남산 외인아파트 살았을적 근처 이발소에 취직했는데, 집에 가서 이발을 해드렸지. 다른 이발사가 오면 "성북동 아줌마 불러~" 그러셨다고 해. 특별히 주문하시는건 없었지. 김두한 씨는 거구였지. 큰 지프차를 타고 다녔는데 그게 가게 앞에서면 땅이 울릴 정도로 엔진 소리가 컸어. 두 분 다 워낙 유명하고 기력도 대단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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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닦아 같은 자리에 정리해두는 이발 도구들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이발은 수학 문제처럼 대해야 해. 내가 비록 초등학교까지 밖에 안나왔지만 수학을 좋아했어. 세모·네모·마름모··· 도형보고 맞추는 걸 잘했지. 이발도 같아. 손님 두피와 두상, 머리카락을 보고 제 각기 다른 디자인을 해야 해. 다만 한가지 원칙을 꼭 지켜야 하지. 바로 '남자 머리는 어느 방면에서 빗어도 곱게 빗어지도록' 깎고 수염은 피부로부터 0.1mm 남게 다듬어야 한다는 점이야. 머리카락은 한 사람당 평균적으로 150만 개가 있고 한 달에 1cm 열흘에 1mm 자란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돼.
―이발소가 많이 사라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쉽지만 받아들여야지. 요새 뉴스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힘들다고 하더라고. 난 이런 것도 다 알고 있어(웃음).이발은 행복한 직업이지만 그만큼 힘들기도 해. 한 명 당 5000원씩 받으며 일하는데 그 손님들마저 다 미용실 가는 세상이야. 누가 하려고 하겠어. 그저 명 다할 때까지 이발소 열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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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에 비치는 새이용원의 낡은 사물들 [사진 = 신경희 인턴기자] |
[디지털뉴스국 신경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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