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운데 에어컨이 고장나서 안 틀어져요. 구청에서 지난주 왔다갔는데, 조금 더 신경써주면 좋겠어요."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구에 있는 필동노인정.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이 곳 2층에 올라가니,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이 노인정은 매일 약 30여명의 할머니들이 오가는 곳으로, 2층은 할머니들의 식사를 마련하는 주방이 있다. 한 할머니는 "에어컨이 작동 안돼서 요리하는데 너무 덥다"며 "우선 선풍기 몇 대를 돌리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4만개에 달하는 무더위쉼터 중 일부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전 시설 개선 등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무더위쉼터란 여름철 폭염에 대비해 고령자, 노약자 등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정한 장소로, 보통 아파트 인근 경로당, 복지회관과 주민센터(동사무소), 은행 등 금융기관이 지정된다. 무더위 쉼터란 표지판이 설치돼야 하며, 에어컨, 구급약 등이 구비돼야 한다.
11~12일 매일경제신문사가 서울 무더위쉼터 중 8곳(서울 중구 2곳, 성북구 2곳, 용산구 4곳)을 무작위로 택해 살펴본 결과, 총 6곳이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 구급약이 비치되지 않은 곳이 4곳,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곳 1곳, 무더위쉼터 표지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이 1곳이었다.
전국적으로 1970곳이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주민센터의 경우, 서울시가 모범사례로 홍보하는 홍제3동 주민센터는 카페와 쉼터가 따로 마련돼 있다. 하지만 성북구·용산구의 일부 주민센터는 단순히 민원실을 무더위쉼터로 지정했다. 후암동에 거주하는 한 할머니는 "노인정에 가지 뭐하러 더위 식히러 주민센터에 가겠느냐"고 했다. 은행 역시 형식적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아, 중구청 내 은행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무더위쉼터라며 시민들이 은행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형식적인 지정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 도움이 되
행안부 관계자는 "여름철 뙤약볕에서 밭일을 하시다가 열사병 등에 걸리는 노인분들이 많다"며 "어르신들은 여름철 한낮엔 가급적 외출을 피하고, 동네 복지관, 경로당 등 무더위 쉼터를 들르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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