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공개된 판결은 얼마나 될까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처리된 민사소송 중에서
대법원에 공개된 건 단 0.3%뿐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법관이 아니면 판결문을 보기 힘들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이 판결문을 보려면 대법원을 직접 찾아가야 하는데 예약부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왜냐고요? 연간 1,800만 건 이상 판결이 나오는데도 대법원 판결문 열람실에는 달랑 컴퓨터 4대가 전부거든요. 이마저도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하죠. 더구나 1인당 이용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제한돼, 계산하면 하루 20명에게만 허락된 셈이 됩니다. 때문에 이 바늘구멍을 뚫으려고 밤마다 전국의 법조인과 국민은 살벌한 예약 경쟁을 치러야하죠.
운 좋게 예약에 성공해도 또 '큰 산'을 넘어야 합니다. 열람실에는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건 빈 종이와 펜 하나 정도거든요. 적어 봤자 법원명과 사건번호 정도죠. 이걸 토대로 대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본을 받아보는 데 또 며칠이 걸립니다.
천신만고 끝에 판결문을 받아도 사건관계인이나 회사명이 모두 AA, AB같이 알파벳으로 돼 있습니다. 이건 판결문을 읽는 건지 암호를 해독하는 건지,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누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조차 알기 힘들죠.
원칙이 '공개'면 뭐합니까. 막상 보려고 하면 이중 삼중으로 판결문을 꼭꼭 숨겨놓고 힘겹게 찾아 읽어도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는데요. 개인정보 보호 때문이라지만, 판결문 공개는 재판이 공정한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본 자료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등등의 많은 나라들은 이미 판결문을 전면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이런 건지 자신이 내놓은 판결문을 남이 보는 데 자신이 없는 걸까요. 당당한 판결이라면 안 그럴텐데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판결문에 벽을 쌓는 일은 지양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