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삼성 라이온즈는 ‘해태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해태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거침없이 한국시리즈 4연패를 하는 동안 이들의 들러리 행세를 했던 것이 삼성이었다.
1986년과 1987년 해태의 파트너로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삼성은 맥 한 번 못 추고 나가 떨어졌다.
이때부터 삼성에 내려진 지상 특명은 ‘해태 타도.’ 오로지 해태만 이기라는 지시가 그룹 고위층에서 떨어졌다. ‘야구단 해체 불사’까지 언급됐을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하지만 이런 그룹의 얼음장 같은 불호령에도 삼성은 1988년과 1989년 잇달아 정규시즌 4위에 그치고 말았다. 완연한 내리막 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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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한파가 몰아치던 경기도 물왕저수지에서 고생 모르고(?) 살아온 삼성 선수들이 옷을 벗어 던졌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탓할 처지가 아니었다. 프로야구 선수의 때 아닌 해병대 극기훈련에 불만이 터져 나올 법도 했지만 다들 해태를 못 이긴 ‘형벌’로 받아 들였다.
당시 한국최고의 타자 이만수(왼쪽에서 두 번째)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제 아무리 ‘헐크’라 해도 영하의 추위에 치러지는 혹독한 훈련은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만수 왼쪽 옆은 유백만 수석코치. 당시 나이 48세였다.
삼성 선수들은 지상훈련을 마친 뒤 알몸으로 물왕저수지에 뛰어 들었으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면 1990년 삼성의 성적은 어땠을까. 삼성은 이 해 ‘해태타도 극기훈련’ 덕분이었는지 플레이오프에서 사상 처음으
‘극기훈련’을 주도한 정동진 감독은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고도 목이 잘리는 불운의 주인공이 됐다.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대호 기자 dhkim@maekyung.com]
사진제공=장원우 전 주간야구 사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