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김승현(35, 서울 삼성)이 ‘매직 핸드’로 돌아왔다. 삼성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복귀한 이후 가장 컨디션이 좋다. 전성기 기량에는 부족하지만 팬들을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김승현은 지난 22일 잠실 원주 동부전에서 벤치와 관중을 들썩이게 했다. 수치상 기록은 7점 5어시스트 2리바운드 1스틸이었지만, 존재감은 엄청났다. 수식어가 필요없는 이름 그대로 ‘김승현’다웠다.
김승현은 농구천재로 불린다. 넘치는 패스 센스로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연출한다. 김승현이 공을 잡으면 코트에서 뛰는 동료와 상대를 포함한 9명의 선수들도, 그를 지켜보는 관중들도 긴장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패스 때문이다.
22일 잠실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농구 원주 동부와 서울 삼성의 경기에서 삼성 김승현이 4쿼터 중반 73-66으로 앞서가는 가운데 엄지손가락을 세워 작전사인을 보내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
올 시즌 김승현이 달라진 이유는 지난 시즌까지 볼 수 없었던 돌파와 수비다. 김승현은 이날 상대 수비의 빈틈을 노려 수차례 골밑을 파고 들었다. 그 중 두 차례 왼손과 오른손으로 더블 클러치를 성공시켰다. 또 수비에서도 이승준이 레이업을 시도하기 위해 공을 잡는 순간 공을 낚아채 속공으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몸 상태가 확실히 좋아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었다. 김승현은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경기 종료 직전 결정적 실책으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날 김승현은 5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물론 그 중 일부는 동료와의 호흡이 문제였다.
김승현에게 실책은 전성기 때도 늘 따라다녔던 꼬리표다. 턴오버가 많다고 해서 ‘턴승현’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동료들이 김승현의 패스를 반만 받아 먹어도 실책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상대 뿐 아니라 동료도 속이는 패스가 많기 때문에 나오는 실책이 절반에 가깝다.
삼성 선수들은 23일 휴식을 받았다. 4연패 분위기 쇄신을 위한 코칭스태프의 배려다. 김승현도 모처럼 용인 숙소를 떠나 달콤한 휴식을 가졌다. 김승현은 전날 팀은 졌지만 경기 내용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마지막 실책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았다.
김승현은 “어제 게임을 해보니까 확실히 몸이 좋아진 것 같다. 지금 느낌으로는 앞으로 점점 괜찮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며 스스로도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마지막 실책도 경기 중에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에 안 그러면 된다”고 웃어 넘겼다.
김승현이 제 모습을 찾아가면서 출전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불거지고 있다. 김승현은 올 시즌 6경기서 평균 22분21초를 뛰고 있다. 팬들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김승현이 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22일 잠실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농구 원주 동부와 서울 삼성의 경기에서 삼성 김승현이 동부 박지현을 속이는 노룩 백패스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
이어 김승현은 “시간 욕심은 정말 없다”고 강조하며 “내가 이 나이 먹고 30분 이상 뛰겠다고 하는 것도 후배들에게 미안한 일이고 민폐다”라고 말했다. 올 시즌 캡틴 완장을 찬 맏형다운 생각이었다.
김동광 감독이 김승현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비력이다. 누구나 아는 김승현의 최대 약점이다. 김승현은 “난 원래 수비가 강한 선수가 아니다. 지금 와서 내 기량이 얼마나 더 늘겠나? 다만 내 실력을 그냥 인정해주셨으면 한다. 감독님은 아직도 기대를 더 하시는 것 같다”고 웃은 뒤 “그래서 감독님도 수비가 안 될 때 수비력이 좋은 (이)정석이나 (이)시준이를 기용하시는 것 같다. 또 그게 맞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승현은 올 시즌 “내가 하고 싶은 농구를 하겠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코트에서 조금씩 김승현 농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김승현은 “난 멋있는 플레이를 보여주려고 농구를 한 적이 없다. 쇼를 위한 농구를 하면 그냥 정신나간 미친놈일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농구를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승현의 즉흥 쇼타임은 마이클 더니건이 부상에서 돌아올 때 더 빛을 낼 것으로 보인다. 더니건은 김승현이 평소 말하던 “내 말을 잘 듣고 열심히 뛰어주기만 하는 선수”에 맞춤형 외국선수
김승현은 “이제 시즌 초반이다. 섣부르게 생각하지 않겠다. 더니건이 돌아오면 아마 활동 반경도 더 넓어지고 팀도 더 좋아질 것이다”라며 “난 항상 마지막 시즌이라고 생각하고 농구를 하고 있다”고 의욕을 숨기지 않았다.
김승현이 춤을 추면 삼성도 신바람이 난다. 올 시즌 성적도 김승현의 매직 핸드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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