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결국에는 기회를 잡았다는 축하인사에 수화기 너머 황선홍 감독은 숨을 크게 마신 뒤 내뱉었다. 안도의 의미도 들어있고 벼랑 끝 외나무 승부에 대한 긴장감도 포함된 한숨이었다.
포항이 천신만고 끝에 정규리그 우승의 기회를 잡았다. 선두 울산이 27일 부산에게 1-2로 덜미를 잡히면서 2013년 챔피언 트로피의 향방은 12월1일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결정 나게 됐다. 거짓말처럼, 1위 울산(73점)과 2위 포항(71점)이 이때 격돌한다. 이날 이기는 자가 웃는 자가 된다. 여전히 울산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홈에서 하는 경기고 무승부만 거둬도 정상에 선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쫓기는 쪽은 울산이다.
황선홍 감독이 울산과의 결승전에 대한 설렘을 전했다. 부담보다는, 신나게 즐기고 오겠다는 편안한 각오다. 사진= MK스포츠 DB |
그런데 문제는, 그 어려운 질주를 포항도 똑같이 했다는 것이다. 울산이 6연승을 달리면서도 독주를 하지 못했던 것은 포항 역시 5연승을 내달렸기 때문이다. 도망가면 쫓아갔으니 울산도 답답했다. 만약 그 5연승 중에서 단 1경기만 어긋났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불가능했다. 쉽게 말해서, 포항은 근 1달간 계속 결승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황 감독은 “1년에 50경기 정도 치르는데 50경기 전부다 피 말리는 전투 같으니 어떻게 살겠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어 “울산의 페이스가 워낙 좋아서 어렵다고 봤는데, 거짓말처럼 기회가 왔다”면서 “기회를 얻었다는 것까지만 생각했다. 아직 다른 것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는 말로 다시 전투모드 돌입을 알렸다.
27일 이전까지만 해도 울산이 우승을 위한 9부 능선에 올랐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27일 포항이 서울을 3-1로 꺾고 울산이 부산에 1-2로 패하면서 확률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기세도 포항이 좋고 하늘도 포항을 돕는 분위기다. 울산 공격의 핵 김신욱과 하피냐가 경고누적으로 포항전에 나설 수 없다. 황 감독은 “두 선수가 빠지는 것을 마냥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다른 선수들도 훌륭하다”고 경계했으나,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은 확실하다.
역시 심리적으로 압박당하는 쪽은 울산이다. 황 감독 역시 “우리는 중간에 1번만 져도 끝이니까 그냥 우리 것에 충실하자고 했데 계속 이겼고 그러자 기회가 왔다. 참 희한한 것이 축구”라면서 “쫓기는 것은 울산 아니겠는가. 우리는 부담 없다. 그냥 신나게 놀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임할 것”이라는 말로 홀가분하게 결승전에 즐기겠다는 뜻을 전했다.
게다 단판승부는 익숙하다. 황선홍 감독은 “비기는 것이 걱정될 뿐 단판승부는 자신 있다”며 당당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포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FA컵 2연패를 달성했다. 더군다나 올해 FA컵은 전주 원정에서 전북을 잡고 들어 올린 트로피다.
황선홍 감독은 “(고)무열이와 (이)명주 또래 23세 이하 선수들이 많다. 어린 선수들이 큰 무대에 대한 변수만 잘 극복해준다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FA컵 결승전을 통해 경험해봤지 않는가”라면서 여유로운 신뢰감을 전했다. 덧붙여 “이번 경기를 잘 풀면 우리의 젊은 자원들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일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제일 어려운 팀을 원정에서 만난다는 부담을 극복해 낸다면 앞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말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포항은 올해 울산에게 1번도 이기지 못했다. 1무2패로 열세다. 올 시즌 포항이 상대전적에서 밀리는 팀은 울산뿐이다. 제일 어려운 팀이었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은 “결정적일 때 한 번만 이기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웃었다. 이어 “어떻게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 이렇게 붙여놨는지 모르겠다. K리그 30년 역사에 이런 매치업이 있었을까 싶다. 최고의 경기가 되지 않겠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지도자의 심정은 설렘에 가까웠다.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감정이다. 하지만 들뜬 것과는 다르다. 차분한 설렘이다. 일단 감독은 상황을 즐기고 있다. 만약 선수들까지 신나게 놀고 올 수 있다면, 포항의 ‘시즌 더블’ 꿈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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