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한이정 기자] “어느 정도 할 줄은 알았지만, 기대 이상이다”
2008년 신인 1차 지명될 정도로 촉망받는 유망주 투수는 오른 팔꿈치 부상으로 결국 임의탈퇴 공시됐다. 야구공도 내려놓았다.
뛰어난 운동 감각으로 다른 종목에서도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갔다. 대신 배트를 들었다.
팔꿈치 부상 후유증으로 투수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바꾼 지 3년 만에 1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타고투저가 예년보다 약해진 가운데 3할 타율(0.327)로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11위에 올라있다. 짧은 시간 내 빠르게 정착한 LG 외야수 이형종(28)이다.
이형종은 5일 현재 29경기 출전해 타율 0.327 104타수 34안타 3홈런 1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OPS(출루율+장타율)은 0.860(20위)에 달하고, 도루도 7개(2위)로 성공 확률이 87.5%에 이른다.
3년 만에 이룬 성과다. 이형종을 믿고 기다린 양상문(56) LG 감독은 “하체, 허리 등 신체조건이 타격을 배우기 적합했다. 어느 정도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아주 잘 하고 있다”고 흡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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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 이형종은 5일 현재 올해 29경기 출전해 타율 0.327 34안타 3홈런 15타점 7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투수가 타자로, 타자가 투수로 바꾸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야구전문가는 선수가 포지션을 전환하는 게 ‘정말 야구가 절박할 때’나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장성호(40) KBS N 해설위원은 “아마추어와 다르게 프로에서는 투수와 야수의 파트가 세분하게 나눠져 있다. 투수가 배우는 야구와 야수가 배우는 야구는 엄연히 다르다. 따라서 프로 세계에서 몸담던 투수가 야수로 변신한다는 것은 야구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종열(44) SBS스포츠 해설위원 역시 “투수에서 타자로 바꾸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자 도박이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를 이겨냈으니 이형종은 참 대단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아마추어 시절 타격 실력이 뛰어났다고 해도 프로 무대에서 ‘레벨’이 다르다고 했다. 이 위원은 “프로 입문 후 투수에서 타자로 바꾼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과거 고교야구에서 투수가 투-타를 병행하나 최근에는 지명타자를 쓰고 있다. 투수가 타석에 서는 경험이 부족하다. 프로 와서 (아마추어 시절)했던 걸 가지고 하기에는 기존 야수와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그 벽이 참 높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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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종은 1년간 타자로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죽을 각오로 운동했다. 사진=MK스포츠 DB |
1군 주전 자리를 꿰차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이형종에게 현실로 이뤄졌다. 생각보다 빠르게 정착하며 생각 이상으로 잘 하고 있다. 그는 “절실하게, 누구보다 열심히 야구를 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형종은 1년 안에 승부를 보겠다고 다짐했다. 타자로 변신을 준비할 때 이형종은 “죽을 각오를 다해 1년 안에 감독님이나 코치님께 50%, 아니 30%라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안 된다면, 차라리 내가 옷을 벗겠다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이형종은 4월 28일 수원 kt전까지 4할 타율(0.402)을 기록했다. 이후 6경기에서 22타수 1안타(0.045)로 타격감이 주춤하다. 다시금 칼을 갈고 있다.
이형종은 “개막 엔트리 포함, 1번타자 기용 등 불투명했던 일들을 이뤄서 기뻤다. 그런데 하다 보니 (주위는 물론 내 스스로에 대한)기대치가 커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한다”고 했다.
이형종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지 모를 후배를 위한 조언도 남겼다. 우선은 현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이형종은 “하던 걸 후회 안 할 만큼 해보고 바꿨으면 좋겠다. ‘이거 아니면 죽겠다’ ‘안 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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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은 투수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바꿔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다. 사진=MK스포츠 DB |
KBO리그에서 포지션을 바꿔 성공한 경우는 흔하지 않아도 아주 없지는 않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이승엽(41·삼성)이다. 홈런, 타점, 득점 등 타격 관련 KBO리그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이승엽 역시 삼성에 입단할 때 포지션은 투수였다.
그러나 왼 팔꿈치 수술을 한 이승엽은 투수가 아닌 타자로 뛰기를 희망했다. 부모님과 구단을 끈질기게 설득해 ‘국민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재활을 마칠 때까지만 타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22년째 재활(타자)을 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생은 이호준처럼’의 주인공 이호준(41·NC)도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한 선수 중 1명이다. 1994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한 그는 첫 해 10경기에 등판했다. 성적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평균자책점은 10.22이었다. 12⅓이닝 동안 홈런을 7개나 허용했다.
그 후 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1998년 첫 3할 타율(0.303)과 두 자릿수 홈런(19)을 기록한 이호준은 SK, NC에서 뛰며 호쾌한 타격을 선보였다. 통산 1976경기 타율 0.282 1831안타 330홈런 1229타점의 성적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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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우는 2012년 이후 146경기 타율 0.212 69안타 42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투수가 타자로 변신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수도 많다.
김대우(33·롯데)는 광주제일고 재학 시절 투수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이에 2003년 2차 1순위로 롯데의 지명을 받았지만, 해외 진출을 꿈꾸고 고려대에 진학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롯데 유니폼을 입었지만 김대우는 프로 무대에서 투수로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1군에서 통산 4경기 등판해 3패 평균자책점 16.39를 기록했다.
이대호가 해외로 떠난 해부터 타자가 돼 통산 146경기 타율 0.212 69안타 42타점으로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올해 12경기에 나섰지만 타율 0.133(15타수 2안타) 2타점에 그쳤다.
김원석(28·한화)은 사연이 많다. 2012년 7라운드 전체 60순위로 한화에 입단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배트를 다시 잡았으나 1년 후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을 거쳐 2015년 한화로 돌아왔다. 그는 신데렐라로 변신했다.
올해 스프링캠프부터 두각을 보이더니 두산과 개막 3연전에서 타율 0.538 13타수 7안타 3타점으로 맹활약을 펼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1달간 전열에서 이탈했다가 5월 초 돌아왔다. 복귀 후 첫 선발 출전한 5일 대전 kt전에서 멀티히트(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삼성의 최원제(28) 역시 투수에서
그는 육성선수 신분으로 퓨처스리그에서 활동 중이다.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21경기 출전해 타율 0.298 17안타 10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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