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야구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배영수(38)는 호탕하게 웃었다.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은 목소리였다.
배영수의 은퇴 소식이 전해진 건 29일 오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축포를 터뜨린 지 사흘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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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영수(가운데)가 26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후 두산 베어스 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
정상에 있을 때 그는 내려가기로 했다. 플레잉코치 제안을 받았으나 그의 최종 선택은 ‘은퇴’다. 배영수답게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배영수는 지난해 11월 두산 베어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연봉은 1억원으로 한화 이글스에서 받던 금액(5억원)보다 80%나 깎였다. 그러나 그는 현역 연장에 강한 열망이 있었다.
배영수는 “그때(2018년 11월)는 1년만 더 하자는 생각이 아니었다. ‘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가짐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1년간 37경기 1승 2패 평균자책점 4.57(45⅓이닝 25실점 23자책)을 기록했다. 4월 2일 엔트리에 등록된 그는 6월 중순 숨 고르기 차원에서 11일간 빠진 걸 제외하고 줄곧 1군에 있었다. 두산에는 배영수가 필요했다.
투수 배영수를 그리워하는 팬이 많지만, 마운드에서 배영수의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의 마지막 투구는 한국시리즈 4차전 10회말이었다. 공 5개를 던져 두산의 통산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가장 극적이면서 멋진 마무리였다.
개인적으로 8번째 우승 반지였다. 그렇지만 끝이 보이는 시기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마흔이었다. 2000년 프로에 입문해 20번째 시즌을 치렀다. 의미 있는 시즌에 스스로 물러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그림이라고 판단했다.
시즌 내내 밝은 표정을 짓던 배영수였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았을 뿐, 힘듦도 많았다. 2007년 팔꿈치 수술 후 힘들게 버텨왔던 배영수의 야구 인생이었다.
그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 부침도 겪었다. 두산에는 좋은 투수들도 많다. 내년에는 쉽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가운데 감독님을 만나 (플레잉코치, 은퇴 등 거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은퇴도 함께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모든 야구선수가 원하는 시기에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를 내려가지 않는다. 타의에 의해 쫓겨나는 경우가 흔하다. 조용히 야구공을 내려놓는 선수도 많다.
배영수는 스스로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았다. 바로 지금이었다. 그는 “배영수는 기분 좋게 그만두고 싶었다. 이렇게 마치는 게 가장 좋은 거라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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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영수가 26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
배영수는 “그동안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이 많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꼭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가 몸을 담았던) 삼성, 한화, 두산의 팬 여러분도 큰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배영수의 꼬리표 중 하나는 ‘현역 최다 승(138) 투수’였다. 뗐다. 개의치 않다. 그는 “타이틀에 연연하지도 않으며 중요하지도 않다. 다 내려놓았다”라며 껄껄 웃었다.
배영수의 통산 성적은 499경기 138승 122패 3세이브 7홀드 2167⅔이닝 1436탈삼진 평균자책점 4.46이다. 2004년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승리(2004·2013년), 탈삼진(2005년)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오뚝이’처럼 일어선 배영수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이자 가장 사랑받는 선수였다. 정작 스스로 발자취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리그 역사에 남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다. 그래도 의지의 한국인, 의지가 강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온갖 풍파에 너무 많이 힘들었는데 의지 하나로 여태 버텨왔다”라고 힘줘 말했다.
배영수의 미래는 현재 ‘백지’ 상태다. 그는 “(오늘부터) 민간인 배영수
그렇지만 야구인 배영수로 돌아올 날이 오래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배영수는 조만간 구단과 만나 거취를 논의할 예정이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