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지난 2014년 1월 ‘고교 교과서 검정기준’을 통해 “역사 교과서는 각료 회의 결정이나 다른 방법으로 표현된 정부의 통일된 견해나 최고 재판소의 판례가 있으면 이에 근거해 기술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일본은 민간이 교과서를 집필하고, 문부과학성(교육부)은 4년마다 통과여부만 심의하는 방식이지만 아베 정권의 새로운 고교 교과서 검정기준은 정부의 견해를 교과서에 반영하라는 얘기다. 아베 정권이 그 동안 ‘독도는 일본땅’이라거나 ‘위안부 강제성은 없었다’고 줄기차게 우익성향의 주장을 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고교 교과서에서 역사·영토 문제 왜곡 주장 확대는 이미 예견돼 왔던 거나 다름없다.
이미 지난해 중등 교과서 검정에서 역사 공민(사회) 지리 등 사회과 18종 교과서에 모두 독도 관련 기술이 포함됐고, 이에 앞서 2014년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사회과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며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기술됐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중 다이이치가쿠슈샤(지리A)는 ‘한국과 영유권 문제가 있다’는 현행 독도 기술을 ‘일본의 영토’, ‘한국이 점거’ 등의 표현으로 바꿨다. 일부 교과서는 독도에 대해 1905년에 일본에 편입됐다거나 에도시대에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등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며 영유권 주장을 하기도 했다.
또 시미즈서원의 경우 당초 지난해 검정을 신청할 때는 독도에 대해 “한국과의 사이에 시마네현에 속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가 있다”고만 서술했다. 하지만 문부과학성이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라는 검정 의견을 내놓자 최종 검정통과본에는 “정부는 한국이 불법검거하고 있어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수탁하는 등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일본 정부가 사실상 입맛에 맞게 교과서 내용에 개입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소재를 애매한 표현으로 바꾸는 등 “강제성이 없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맞춘 듯한 내용이 포함됐다. 위안부에 대해 “일본군에 연행돼”라는 표현을 “식민지에서 모집된 여성들”(시미즈서원)이라고 바꾸거나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표현을 “위안부로 전지(戰地)에 보내졌다”(도쿄서적)로 변경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표현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것으로 작년 말 위안부 합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초·중·고교 교과서에 영토·역사 문제와 관련해 왜곡된 내용이 확대되면서 현 세대는 물론 향후 한일 관계의 미래도 점점 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 정부는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장래를 짊어질 미래 세대뿐만 아니라 침탈의 과거사로 고통받은 주변국들에 대한 엄중한 책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독도에 대한 일본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역사문제 기술에 대해서도 시정을 재차 요구하고 장기적으로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학술적 대응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도 이날 대변인 명의의 항의성명을 내고 즉각 시정을 촉구했다. 이승복 교육부 대변인은 “일본 정부가 역사적 인식과 판단 능력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관과 그릇된 영토관을 가르치는 것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 있는 위험스러운 일로 동북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비교육적인 행위”라며 “일본은 왜곡된 교과서와 그 근간이 되는 학습지도요령해설서를 즉각 시정하고 작년 말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온전히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고
교육부는 국내의 학교 현장에서 독도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 서술내용에 대한 학술회의를 잇따라 열며 맞대응하기로 했다. 오는 6월에 교과서 왜곡 시정요구안을 작성해 일본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강봉진 기자 / 노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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