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는 얼굴이 상기됐고 트럼프는 눈이 충혈됐다. ‘꼭두각시’ ‘범죄집단’ ‘지저분한 여자’ 같은 막말이 난무하고, 사회자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상대의 발언을 방해하기도 했다.
19일(현지시간) 네바다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제3차 대선 후보 TV토론은 두 후보가 한치의 양보도 없는 날선 공방을 주고 받으며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했다.
아이보리색 바지 정장을 입은 힐러리와 검은색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를 맨 트럼프는 토론장에 입장할 때부터 서로 악수도 생략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 등 치열한 대결을 예고했다.
토론 시작 30분 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토론 소재로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힐러리는 “러시아 해커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을 해킹했다”면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해킹을) 러시아가 했는지 중국이 했는지, 아니면 다른 나라가 했는지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힐러리가 다시 “러시아가 미국 선거에 개입하려 드는데도 트럼프는 이를 비난하지 않고 있다”고 몰아세우자 트럼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푸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을 인정하지 않는다. 푸틴이 힐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힐러리가 푸틴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역공에 나섰다.
힐러리와 트럼프는 대통령 자질 논란으로 다시한번 격하게 충돌했다.
힐러리는 “핵 버튼을 누른 뒤 발사되는 데는 4분밖에 안 걸린다. 트럼프처럼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핵 버튼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공격했다. 트럼프는 “힐러리는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다”라며 “200여명의 군 장성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는 오히려 “4성 장군 출신이 FBI에서 위증을 했다고 5년이나 수감돼 있었는데 힐러리는 3만3000개 이메일을 고의로 삭제하고 수백번 거짓말을 했는데도 버젓이 대선에 출마했다”고 비난했다.
토론 시작 1시간 후인 10시경, 트럼프의 성추문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두 후보이 언성이 높아졌다.
트럼프는 “나는 그 여자들을 모른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내 아내에게도 그 문제로 사과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완전히 소설이다. 힐러리 캠프가 배후에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힐러리는 그러나 “트럼프는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언행이 바로 트럼프의 본 모습”이라고 몰아세웠다.
트럼프는 주제를 바꿔 “힐러리 가족이 연루된 클린턴재단은 한마디로 ‘범죄집단’”이라며 “여성을 죽이고 학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서 2500만 달러를 받아 놓고 여성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힐러리는 “나와 재단은 떳떳하다”며 “트럼프재단은 자선기금으로 6피트짜리 트럼프 초상화를 사지 않았나”라고 맞받았다.
힐러리가 “트럼프는 여성 비하 등 불편한 이야기만 나오면 답변을 회피하고 대화의 주제를 다른 데로 돌린다”면서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사과한 적도 없다”고 공격하자 트럼프는 “아니다, 틀렸다”라며 발언을 방해하기도 했다.
토론이 막판으로 치닫자 ‘막말’이 터져나왔다.
힐러리가 “사회보장기금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면서 “트럼프의 정책으로는 이를 메울 수가 없다”고 주장하자 트럼프는 “정말 고약한 여자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오바마케어와 관련해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면 의료보험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설명하자 트럼프는 “당신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라고 비아냥거렸다.
정책공약을 주제로 한 토론에서도 설전이 이어졌다.
트럼프가 “일본 독일 한국 같은 부자나라들이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고 평소 주장을 반복하자 힐러리는 “미국은 동맹을 통해 평화를 지켜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동맹을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트럼프는 “자유무역협정을 재검토해 다른 나라에 빼앗긴 미국의 일자리를 찾아오겠다”고 하자 힐러리는 “클린에너지, 중소기업 육성 등을 통해 중산층에 새로운 기회를 제고하겠다”고 했다.
불법이민자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가 “강한 국경이 필요하다. 튼튼한 장벽을 국경에 쌓겠다”고 하자 힐러리는 “트럼프타워를 불법이민자의
힐러리와 트럼프는 총기규제, 낙태문제, 대법관 임명, 중동정책, 국가부채 등 다양한 정책 사안에 대해서도 양극단을 달리며 서로 다른 해법을 내세웠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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