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앞으로는 자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비자를 내주기 전에 휴대전화 제출이나 소셜미디어의 비밀번호를 요구할 수 있다. 어떤 웹사이트를 방문했는지도 살펴보고, 필요하면 비자 인터뷰 시간을 종전보다 한층 늘릴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강조했던 이같은 '극단적 심사'(extreme vetting)는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하며 특히 당초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동맹국들도 예외없이 적용할 방침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일 (현지시간)미 국토안보부가 테러 방지 차원에서 미국 비자를 신청하는 외국인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광범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의 수석카운슬러인 젠 해밀턴은 "미국 입국 목적과 관련해 의문이 있을 경우에는 합법적인 이유로 들어온다는 것을 비자 신청자들이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 정부는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이민자뿐 아니라 방문객들에게 여러가지 추가 정보 제공을 요구할 방침이다. 비자의 종류와 상관없이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적용되는 셈이다.
강화된 비자 심사에서 눈길을 끄는 항목은 휴대전화 제출이다. 모든 비자 신청자에게 일괄적으로 요구하는건 아니지만 필요하면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전화번호와 다른 정보까지 샅샅이 살펴볼 가능성이 있다. 국토안보부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누구와 의사 소통하는지를 파악하는게 목적인데 이처럼 휴대폰에서 얻은 정보가 매우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자 신청자의 소셜미디어와 비밀번호를 요구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 어떠한 글을 올렸는지 조사할 수도 있다. 비자 인터뷰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가능하다. 입국자의 정치적·이념적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들은 미 안보당국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까지 검열하겠다는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반발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만족할만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이들을 미국내로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비자 신청자가 정보 제공을 꺼리면 비자 발급 인터뷰를 연기하거나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영사 1명당 하루 인터뷰 대상자도 120명으로 제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같은 방안을 비자면제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한국, 일본, 호주 등 38개국가도 똑같이 적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비자 신청자에 대한 '극단적 심사'를 요청한 공문을 지난달 전 세계 미국 대사관에 배포했다. 공문을 통해 비자 신청자의 신원을 꼼꼼하게 살펴볼 것을 지시하면서 외국 방문기록, 15년치 근로기록, 전화번호와 이메일, 소셜미디어 정보 등을 확인하도록 했다. 틸러슨 장관은 "비자발급 결정은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며 "국가안보에 조금이라도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비자 발급을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자 심사 강화가 미국인들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의 까탈스러운 심사에 불만을 갖는 일부 국가들이 미국인들에게 이와 유사한 규정을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 당국이 훨씬 엄격해진 비자 심사를 적용해도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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