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투자시대` 금융규제는 구석기 수준

금융거래가 모바일·온라인화하고 있고 새로운 핀테크 사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금융 규제는 여전히 오프라인 금융시장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금융서비스는 영업점 창구를 통해 대면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전제가 기존 금융 규제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서면(書面)'이라는 단어가 총 29회 사용되고 있다. 대개 '서면'은 금융회사 창구를 찾아가 서류를 주거나 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전자문서는 '서면'에 해당되지 않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제68조·제124조·제436조를 살펴보면 '서류 등'과 '전자문서'를 별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자본시장법상 '서면'의 개념에 '전자문서'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시중은행들이 도입한 태블릿PC 뱅킹이 점차 종이 서식을 없애고 100% 전자문서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행 법이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영업점 창구와 같은 대면 채널을 통해야만 한다는 점이 단적인 예다. 다행히 금융당국은 로보어드바이저의 경우 비대면 투자자문을 조만간 허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인공지능 열풍에 힘을 얻은 결과다.
금융투자상품 판매는 은행 직원의 태블릿PC 등을 활용한 방문판매도 막혀 있다. 고객의 자율적 방문 요청으로 은행 직원이 찾아가더라도 고객은 태블릿PC를 통해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에 가입할 수 없다. 방문판매법 적용을 받으면 고객은 계약 후 14일 이내 청약 철회가 가능한데 펀드와 같은 금융투자상품은 14일 이내 원금 손실이 될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은행연합회가 회원 은행의 의견을 수렴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방문판매 시 방문판매법 적용 배제를 계속 건의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태블릿PC를 통한 영업 활동은 은행 창구와 동일한 시스템과 판매 절차를 따른다"며 "금융소비자의 편의와 금융업 발전을 위해 이러한 규제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핀테크 혁신이 한국보다 두세 배 앞선 비결은 중국이 사전적으로 규제하지 않은 덕분"이라며 "비대면 금융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부분적으로 시행령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과감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