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을 억제하고자 졸속으로 내놓은 정부 대책 때문에 안전 위험이 높은 노후 아파트 단지가 내년까지 방치될 것으로 보인다. 안전진단이 재건축 억제를 통한 '집값 잡기' 수단으로 전락한 것에 대해 주민 반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서초구 방배삼호아파트는 지난달 민간업체가 실시한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조건부 재건축)을 받았지만 아직 재건축 가능 여부조차 알 수 없다. 지난 3월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D등급을 받을 경우 곧바로 재건축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공공기관 재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문제는 재검증 비용이 비싸고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관할 구청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은 아파트 단지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나 한국시설안전공단에 의뢰하면서 재검증 비용을 대야 한다. 방배삼호는 민간업체의 안전진단 비용으로 6900만원이 발생했는데 이들 공공기관 2곳은 민간업체의 안전진단을 검증하는 비용으로 75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방배삼호 관할 구청인 서초구청은 안전진단 검증 비용을 마련해야 해 비상이 걸렸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방배삼호의 안전진단 결과가 8월 말에 나왔는데 서초구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지난 7월에 이미 이뤄졌다"며 "안전진단 검증에 필요한 예산이 현재 준비돼 있지 않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진단 검증 기간이 안전진단 기간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다. 현재 민간 안전진단의 법정 기간은 60일이지만 공공기관의 검증은 최대 90일이 소요된다. 현장에서 일일이 구조물을 뜯어 보며 검사하는 민간 안전진단보다 이를 검증하는 절차가 더 오래 걸리는 셈이다.
방배삼호는 서초구청이 당장 예산 마련에 실패하면 내년 2월 서초구청 정기예산 편성 때까지 기다려야 해 내년 5월은 돼야 공공기관 안전진단 검증 결과를 받아보게 될 전망이다. 방배삼호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이럴 거면 처음부터 공공기관이 진단하지 왜 민간 진단을 거치도록 해 중복으로 비용을 들이게 하나"라며 "청와대에도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공공기관들은 "인력이 부족해 모든 아파트 재건축 안전진단을 처음부터 공공기관이 맡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안전진단은 아파트 외에 교량, 터널 등 다양한 시설물에서도 이뤄진다. 하지만 이들 시설물은 민간과 공공기관 중 한 곳의 안전진단만 받으면 된다. 아파트에 대해서만 유독 민간과 공공의 2단계 안전진단이 강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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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