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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릴 적부터 반장, 전교회장 등 웬만한 리더 자리를 도맡으며 남다른 리더십 자질을 드러냅니다.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했습니다. 그리고 책임감이 강하고 누구에게나 신뢰감을 잘 주었던 모습 덕분인지 항상 반장을 도맡아했죠. 제가 친구들을 이끌길 좋아했던 성격도 있고요.”
그렇게 박희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CEO적인 자질을 갖춰갑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는 대웅제약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도 소화제로 크게 인기몰이를 한 ‘베아제’의 상품매니저를 맡아 개발과 런칭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항상 동료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며 약 7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1989년, 새로운 분야인 건설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당시 주택 200만 호 정부 정책으로 인해 건축 붐이 일어나 견축경기가 초호황을 누리던 때였습니다.
“제약회사의 시장에서 어려움을 뚫고 성공을 해봤기 때문에 이것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한다면 내 능력, 그 이상으로 발휘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당시는 건설경기가 좋았던 때로 경기 흐름을 타고, 박희준 대표도 엄청난 돈을 벌게 됩니다. 하지만 1991년 중반기부터 건설 경기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의 건설사는 건축 불경기를 견디지 못해 53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빚더미와 함께 부도를 맞았습니다.
“건설업은 처음 도전하는 분야여서 건설업의 경기 사이클을 미처 읽지 못했습니다. 설마 어려움을 겪겠느냐 라는 안일한 생각만 했던 거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박희준 대표는 제약회사 퇴사 10년 만에 다시 제약업계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3년 만에 매출액을 10배 이상 끌어올리며 놀라운 성과를 발휘하던 그때, 그는 자신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임산부들이 아기를 낳고 싶어도 배가 터서 낳을 수가 없다는 고민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죠. 그 꿈틀거리는 욕망과 함께 약 10여 년간 제약회사를 다니면서 얻은 노하우와 경험을 살려 ‘튼살’에 좋은 제품을 개발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창업 준비에 나섰습니다.”
튼살 제품에 대한 시장조사부터 튼살이 생기는 원인 규명, 튼살을 개선시키는 약품 개발까지 약 2년간의 노력 끝에 2000년 ‘프라젠트라’ 라는 튼살 크림을 개발하게 됩니다.
“살이 트거나 갈라지고, 탄력을 잃는 이유가 콜라겐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곧바로 콜라겐을 다량으로 함유한 물질을 찾아보았고, 마침내 태반 추출물을 이용한 튼살 크림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의사들도 밝혀내지 못한 튼살의 원인을 당당히 밝혀낸 박희준 대표. 덕분에 그의 상품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그는 그것을 계기로 아토피 크림 등 제품군을 확대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최근엔 중국 등 해외 시장까지 공략하며 현재 약 22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혁신 부문 국무총리상, 사회공헌기업 부문 여성가족부 장관상, 경영혁신 부문 지식경제부 장관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튼살 제품 전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주)씨에이팜의 박희준 대표. 그의 성공 이야기는 6월 29일 '정완진의 The CEO'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