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브랜드가 장악해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었던 척박한 국내 골프공 시장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주)볼빅의 문경안 회장입니다. 그는 싸구려 공으로 인식되던 컬러골프공으로 국내 골프공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컬러공 시장을 평정했습니다. 지금의 성공이 있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온 그의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The CEO’ 제작진이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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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래-
Q.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본다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학교가 있는 김천시내로 유학(?) 아닌 유학을 갔습니다.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고생하는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되던 때에 취업 준비에 나섰습니다. 제 바람은 당시 샐러리맨들의 최고 인기 기업으로 꼽히던 종합상사에 취업해 제대로 된 일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취업준비에 열을 올렸고, 마침내 만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주)선경(지금의 SK네트워크)의 직물수출부 관리직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Q. 학수고대하던 직장생활은 어떠셨나요?
수출입 업무 지원 관리를 맡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변 사람들은 저를 ‘미스터 문’이라 부르고, ‘미스터 문이 없으면 일이 안 된다’며 제 능력을 높이 사주셨죠. 하하. 그 뒤 동종업계 무역회사로 직장을 옮긴 후에도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하지만 경영 위기로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되고, 저는 20여 년간 해오던 샐러리맨 생활을 접게 되었습니다.
Q. (주)볼빅을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퇴사 후 저는 영업을 하던 노하우를 살려 친구와 함께 철강유통업 회사 하나를 차렸습니다. 그렇게 회사 운영에 매진한 지 십 여 년 정도가 흐른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골프공 제조회사인 (주)볼빅을 인수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라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였고, 실사를 해보니 충분히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골프 마니아여서 관심이 가기도 했고요.
Q. 인수 후, 어떤 일을 진행하셨나요?
하지만 막상 인수를 해놓고 보니 회사는 문제투성이였습니다. 수출은 적자 상태였고 (주)볼빅에 대한 시각은 저가의 싸구려 공이라는 낮은 인식뿐이었죠. 그래서 저는 위기를 떨치기 위해 회사 내에 비상경영을 선포했습니다. 저가의 싸구려 공으로 인지되어 있는 공을 고급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찾아보니 기존에 개발해두었던 4피스 제품이 있더군요. 그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체제를 바꾸고 여러 테스트를 거쳐 가며 공의 완성도를 높여갔습니다. 그렇게 공이 완성되고 나서 저는 고급공에 맞는 고가 전략을 펼쳤습니다. 왜냐하면 골프공 시장의 80% 선물 시장이었고, 선물의 가치는 가격에 의해 정해졌기 때문이죠. 그리고 세계적인 브랜드에 비해 결코 기술력에서 뒤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가격을 동일시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Q. 그 전략들의 결과는 어땠나요?
아침부터 밤까지 전국 골프매장을 직접 순회 영업하며 시장과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가의 이미지를 단숨에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저녁 라운딩을 나간 날이었습니다. 하얀색의 공이 어둠과 조명에 비쳐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 순간, 저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컬러공’이었습니다.
Q. 컬러 골프공 열풍... 어떻게 가능했나요?
사실 컬러공은 저가의 공, 여성들이 치는 공정도로만 인식되던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저는 그 길로 고급 컬러공 개발에 착수했고, 캐디를 중심으로 컬러공의 편리성을 알리며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아이디어는 시장에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출시 한 달 만에 매출이 15%나 오르고, 덩달아 인지도도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기를 발판 삼아 (주)볼빅을 더욱 더 알리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고심 끝에 프로 골퍼들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Q. 어떤 마케팅을 펼치셨나요?
프로 골퍼들이 사용하기만 한다면 그들이 진가를 느끼고 찾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묘수를 내놓았죠. 바로 ‘1억 원의 상금’ 이벤트였습니다. 대회에서 (주)볼빅 공으로 우승을 하면 현금 1억 원을, 예선을 통과하면 200만 원, 사용만 해도 5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이었죠. 그랬더니 8명의 프로 선수들이 저희 공을 선택했습니다. 곧 이어 배경은 프로가 저희 공으로 홀인원에 성공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상승세에 힘입어 선수 후원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요.
Q. 현재는 어떤 일을 진행하고 계시나요?
각종 대회 유치와 공격적인 프로 선수 영입, 선수 후원, 아마추어대회 개최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주)볼빅의 이름을 알려갔습니다. 그와 함께 (주)볼빅의 매출도 점점 상승했고요. 그 결과 (주)볼빅 인수 당시 3.5%에 머물던 시장 점유율은 2011년이 되자 30%로 치솟았고, 수출도 점점 늘
Q.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주)볼빅의 기술력과 품질은 국내외 대회와 각종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입증된 상태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및 400억 원 매출 목표 달성을 올해 목표로 삼았고, (주)볼빅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이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