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은, 만남의 원인을 해석할 때 쓰는 단어다. 느닷없는 접촉인지, 마땅한 얽힘인지. 이 두 가지 연(然)의 결과는, 또 다른 두 가지 연(緣)으로 이어진다. 인연이거나, 악연이거나. 인간은 우연과 필연, 인연과 악연이란 줄 위에 선 존재다. 소설가 김경욱(45)이 창조한 세상은, 우연과 악연이 씨줄과 날줄로 종횡하는 세계다.
소설가 김경욱의 일곱번째 장편 ‘개와 늑대의 시간’(문학과지성사 펴냄)이 출간됐다. 서울에서 좌천된 우범곤 순경(소설 속 황순경)이 우체국과 경찰 지서의 연락망을 끊고, 하룻밤새 마을주민 56명을 총기로 살해한 1982년 4월 26일의 실화를 모티프로 삼았다. 공교롭게도 사건당일로부터 만 34년이 흐른 26일, 소설가 김경욱과 작품 이야기를 나눠봤다.
동명(同名)의 드라마와 같은 제목을 쓴 이유부터 물었다. 김경욱 작가는 “개는 인간을 지키고, 늑대를 인간을 해치는 존재”라며 “날이 저물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고 했다. 왜 하필 ‘우순경 사건’이었는지에 대해선 “30년 이전의 시골마을에서 말단 순경이 총기사고를 저질렀다는 점에 끌렸고, 반사회적 인물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일 뿐이 아닌, 구조적 모순이 깃든 사건이란 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마을주민 56명을 무차별하게 살해하는 시간에도 황순경을 제지하지 못한 건 사회 모순이 또 한축의 원인이라고 작가는 봤다. 모순의 구체적 형태를 묻자 “첫째는 이데올로기, 둘째는 무책임한 사회”라고 그는 답했다. 소설에서 황순경은 총소리의 근원을 묻는 주민에게 “공비가 쳐들어왔다”고 둘러댄다. 살인자를 보고도 면장 손백기(59)는 마을방송은커녕 변소로 숨고, 온천접대를 받다 사태를 파악한 경찰서 지서장 김철호(47)는 마을 앞에 참호를 파고 들어앉는다.
김경욱 작가는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던 이념이 결과적으로 ‘나’를 해치는 모순, 희생자를 막아야 할 사회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자기 보신에 빠지는 구조적 모순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12개의 장(章)으로 나뉜 소설은, 비명에 쓰러진 피해인물의 시각에서 소설을 전개한다. 참혹한 총기사건 전말을 드러내는 건 작가의 관심 밖이고, 다만 ‘인간은 하나의 우주’라는 과점에서 소설을 썼다. 김경욱 작가는 “인간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우주인데, 하룻밤 사이 총격으로 어떤 우주들이 쓰러졌을까를 상상하며 썼다”고 말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했던 신학과생 박만길(24), 미국 아이오와주의 수잔 여사와 펜팔을 주고받던 전화교환원 손영희(22)처럼 일순간의 우연과 악연으로 쓰러진 피해자 삶은 모두가 각자의 우주였다.
세상사의 ‘안’과 ‘바깥’의 문제는 이번 소설에서 김경욱 소설가에게 화두였다. 황순경이 마을 주민을 살해한 무기는 지서에서 탈취한 두 자루의 카빈(carabine)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발명된 카빈이 한국전쟁을 거쳐 남한사회에 들어왔고 궁벽한 마을촌에서 허술하게 보관되다 결국 1982년 살인이란 비극의 도구로 쓰였다. 소설의 첫 ‘0장(章)’도 카빈의 탄생설화에서 출발한다. 김경욱 작가는 “우리 ‘안’의 문제는 짐작보다 더 많은 ‘바깥’과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소재와 주제가 한없이 무겁다 보니, 천인공노할 황순경의 만행, 비명횡사한 피해자의 희생, 수수방관하는 관리자의 침묵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럼에도 김경욱 소설가의 하드보일드한 단문체는 여전하여 유쾌함으로 가득하다. “대문호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평생 남이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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