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피아니스트 백건우(71)는 기자에게 "다시 한번 베토벤의 '산'을 올라볼까 싶다"고 했다. "악보들을 보니까 아유, 다시 해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웃음)"
그로부터 9개월이 흐른 지금, 그는 기어이 등반의 채비를 단단히 마치고 돌아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7개월에 걸쳐 전국 서른 개 무대서 완주하는 대장정이다. 지난 2007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 및 연주를 완성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은 지 꼭 10년 만이다.
이미 지난달 말부터 김해, 제주, 부산 등지에서 일주일에 2~3번꼴로 연주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18일 오전 서울 문호아트홀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수십년 간 연주한 곡들이지만 이제서야 새로운 것이 또 발견돼요. 매번 문을 새롭게 열어 젖히는 것 같은. 베토벤이라는, 정말 음악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거인과 한 인생을 같이 한다는 건 정말 행운이지요. 더 가까워지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어요."
베토벤이 평생에 걸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8번 '비창', 14번 '월광', 17번 '템페스트' 등 대중에게도 친숙한 표제가 있는 곡들과 무제의 곡들로 구성돼있다. 한 명의 손에서 나왔음에도 각각 뚜렷이 구분되는 고유의 빛깔을 갖춘 게 특징.
백건우는 오는 9월 일주일간 열리는 서울 공연에서 밝고 순수한 분위기의 소나타 20번을 시작으로 매회 표제가 있는 곡이 한 개씩 포함된 프로그램을 선보인 뒤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32번으로 끝을 맺는다. "번호 매겨진 순서대로 연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요. 한곡 한곡 모두 완벽하기에 순서가 바뀌어도 아무 문제가 없죠."
어떤 곡들에 가장 마음이 가느냐는 질문에는 "마치 자식이 5명인데 그중 누가 가장 사랑스럽냐고 묻는 것과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10년 전 서울에서만 전곡 연주를 선보였던 것과 달리 올해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도전을 이어간다. 그는 부인이자 배우인 윤정희와 함께 전국의 오지와 섬마을을 종종 찾아가 음악회를 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방의 작은 마을 사람들도 음악을 똑같이 들을 자격이 있잖아요. 물론 매번 악기나 공연장 때문에 애로사항이 있지만 그곳의 청중들과 대화하는 면에서는 서울과 아무런 차이가 없죠."
백건우의 연주일생에는 유독 한 작곡가의 전곡을 집중 탐구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잦았다. 세계적 명성을 불러온 1972년 라벨 독주곡 전곡 연주부터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전곡, 스크랴빈 독주곡 전곡,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 등은 백건우의 음악적 유산이자 그에게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명을 선사한 계기가 됐다. "제가 욕심 많은 사람은 아녜요. 하지만 음악에 대한 궁금증은 누구보다도 많을 거예요.(웃음) 여지껏 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내 연주에 스스로 만족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일흔 나이가 무색하게 활기찬 모습으로 깊은 기량을 선보이는 비결을 물었다. "나이가 들면서 좀더 디테일이 보여요. 그만큼 더 연습해서 소화해야할 것들도 많죠. 음악 외에 특별한 욕심이 없고, 아주 심플하게 생활을 하는 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
서울 공연은 9월 1~8일 총 8회,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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