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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비나이 멤버들이 지난 6월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열린 '멜트다운 페스티벌(Meltdown Festival) 2018' 무대 이후 현지 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드럼 최재혁, 거문고 심은용, 피리·태평소·기타 이일우, 해금 김보미, 베이스 유병구./사진제공=더텔테일하트 |
[케이컬처 DNA] 2016년 18개국, 39개 도시. 50회 공연. 2017년 20개국. 44개 도시. 50회 공연. 인기 K팝 아이돌의 글로벌 투어 성적이 아니다. 록 밴드 '잠비나이'는 수년 전부터 웬만한 보이그룹 부럽지 않은 전 세계 순회공연을 펼쳐보이고 있다. 국악기를 사용해 록 음악을 연주하는 이 팀이 콘서트를 여는 국가는 미국, 영국, 세르비아, 칠레, 캐나다 등으로 특정 대륙에 한정돼 있지 않다.
위 기록을 보고 놀랐다면 잠비나이 노래를 듣고 한번 더 놀랄지 모른다. '국악기가 이렇게 터프했나' 하는 새로운 발견이다. 정규 2집 수록곡 '나부락(Naburak)'은 거문고를 사정 없이 긁는 소리로 출발해 기타, 트라이앵글, 해금 소리를 더하며 긴장감을 계속 쌓아나간다. 이 공간의 기운을 모두 응축하겠다는 듯 고조되던 에너지는 곡이 시작한 지 8분께가 돼서야 비로소 사방으로 뻗쳐나간다. 지난 28일 서울시 중구 매일경제 본사에서 만난 잠비나이 이일우(36·기타, 피리, 태평소)와 김보미(36·해금)는 "거문고도 잘만 활용하면 멋있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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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8일 서울시 중구 매일경제 본사에서 만난 잠비나이 멤버들. 피리, 태평소, 기타 담당 이일우(왼쪽)와 해금 담당 김보미/사진=양유창 기자 |
-이일우, 김보미, 심은용(36·거문고) 3인이 뜻을 모아 2010년 데뷔했습니다. 세 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01학번' 동기인데요.
▷김보미: 동창이라서 안면은 있었는데 재학생 시절에는 친하지 않았어요. 졸업하고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도중에 셋이 의견이 맞아 시작하게 됐죠.
▷이일우: 처음에 모였을 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더라고요. 레퍼런스가 없으니깐 어떤 걸 카피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록 음악과 국악기를 결합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나요.
▷이일우: 중학생 때 메탈리카 러시아 공연을 비디오로 봤거든요. 그걸 보고 굉장히 멋있다고 느껴 기타를 배우게 됐습니다. 지금은 제가 주로 곡을 쓰니깐 메탈 성향의 곡이 나오는데요. 다른 멤버가 곡을 써오면 또 다른 느낌의 노래가 나오겠죠.
-장르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음악인데요.
▷김보미: 사실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애초 무슨 장르의 음악을 하겠다고 모인 건 아니니까요. 국악에 기반을 둔 건 아니에요. 국악기를 쓰고 있지만 국악 어법을 차용하지는 않으니까요. 국악기를 사용한 대중음악이라고 할까요.
[잠비나이 2집 수록곡 '나부락(Naburak)' 연주 동영상]
-국악기로 이토록 강렬한 연주를 만들어내는 비결이 있나요.
▷이일우: 국악기로 창작한 곡들을 보면 대부분 거문고를 배제해요. 거문고를 스틱으로 치다 보면 나무의 탁한 소리가 나니깐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듣기 편한 음악)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건데요. 저는 오히려 거문고는 탁탁 치는 소리가 있기 때문에 리듬과 가락 두 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거문고도 멋있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2010년 데뷔 후 첫 3년간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유튜브에 올려둔 뮤직비디오를 2013년 핀란드 헬싱키 월드빌리지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본 게 해외 진출의 시발점이 됐다.
-해외 무대에 처음으로 섰을 때 어떤 분위기였나요.
▷김보미: 초기 잠비나이는 3명으로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당시 한국에서 공연하면 우리가 3명인데 관객이 2명이고. 게다가 전혀 반응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핀란드 헬싱키 페스티벌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놀랄 정도로 큰 호응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영국 워멕스(WOMEX)라는 곳에서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요. 그래서 투어 스케줄을 짜게 됐습니다.
-공연에서의 반응이 해외 팬덤으로 이어진 건 언제부터인가요.
▷이일우: 저는 2년 전쯤으로 생각해요. 그 전에는 '쟤네 뭐지'라고 하면서 우리 공연에 왔다면 그때부터는 '잠비나이를 보러 가야지'란 마음으로 오게 됐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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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우는 "반응이 좋지 않았던 해외 공연은 한번도 없었다"고 회상했다./사진=양유창 기자 |
해외 평단에서 호평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잠비나이 노래 '그들은 말이 없다'는 2016년엔 미국 국영 라디오 NPR 뮤직에서 '올해 최고 음악 100선'에 꼽혔다. 이 곡을 수록하고 있는 잠비나이 정규 2집은 같은 해 미국 대중문화 격주간지 '롤링스톤'에서는 '당신이 못 들어봤을 15개 대단한 앨범'에 선정됐다.
-해외 평가 중에 기분이 좋았던 게 있나요.
▷김보미: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공기로 바꾼다'는 이야기도 좋았던 것 같고, '라이브를 너무 잘하는 팀'이라는 평도 듣기 좋았어요.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밴드'라는 이야기도 좋았죠.
▷이일우: 요즘엔 해외 공연에 가면 잠비나이 티셔츠를 입고 있거나 가방을 메고 있는 팬도 가끔 보여요.
국내에서도 지난 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을 장식한 이후 팬 증가세에 탄력이 붙었다. 6월 '북촌우리음악축제', 7월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 등 국악을 기반으로 한 축제에 서는 일도 늘고 있다.
-한국에서의 반응이 해외보다 좀 늦게 올라왔는데요. 한국 음악 시장의 편향성이 아쉽지는 않나요.
▷이일우: 예전에는 아쉬웠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아티스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신(scene)이 다양해지지 않을까요. 관객을 탓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김보미: 지금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너무 좁은 거죠. 제한된 영역 안에서 취향을 찾다 보니 다수가 좋아하는 걸 따라가게 되는데 채널이 다양해지면 수요도 다양해질 것 같아요. 저희도 동계올림픽 출연하고 나서 수요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올림픽 폐회식에 섰던 팀이다 보니깐 증명된 밴드라는 이미지가 생긴다고 할까요. 미디어나 공연 기획자가 다양한 음악을 대중에게 노출시켜주는 게 음악 시장을 넓혀가는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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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7월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잠비나이가 공연하는 모습./사진제공=더텔테일하트 |
이들은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일우는 "전통음악 역시 그 시대의 대중음악이었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사운드 특징은 다를 수 있겠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담은 건 같다"고 했다. 국악을 하는 후배들을 위해 조언해달라는 요청에 이일우는 "내가 조언해줄 처지가 아니다"면서 다음처럼 말했다. "다만 '선생님 눈치 보고 하지 말라'고 얘기해줄 수는 있어요. 국악 하는 학생들은 국악 선생님 눈치 보느라고 과감하게 드러내지 못하더라고요. 오히려 욕 먹는 게 더 잘하는 걸 수도 있으
[박창영 문화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