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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컬처DNA] 지코(본명 우지호·26)는 지난달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주최 만찬에서 랩송 '아티스트(Artist)'를 불렀다. "난 나이를 먹지 않고, 도로 뱉을 건데"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아티스트(We are, we are, we artist)"같이 자기애 넘치는 가사가 주목받았지만, 선곡 이유는 노래의 브리지(bridge·절과 후렴을 연결하는 부분)에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백지로 되돌려 놓고/생각 말고 저질러 붓은 너가 쥐고 있어". 펀치라인(청자에게 펀치를 맞은 듯한 느낌을 주는 가사) 제조기로 불리는 지코는 남북 정상에게 대립과 갈등의 세월을 백지로 되돌리고, 평화를 향한 과감한 결단을 내리길 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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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작부터 여타 아이돌과 달랐다. 자신이 속한 그룹 블락비의 첫 싱글(1~3곡만 들어가는 음반) '두 유 워너 비(Do You Wanna B?)'를 직접 제작하며 데뷔했다. 상당수 아티스트형 아이돌의 작사·작곡이 마케팅 차원에 그치는 데 비해 그는 자신이 부를 대부분 곡의 작사·작곡을 주도한다. 지금은 워너원, 세정(구구단) 같은 후배 아이돌에게도 노래를 주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삽입곡을 작곡하는 등 한국 가요계 대표 작곡가로 부상하는 중이다. 아이돌의 정의를 바꾸며 평양에까지 스웨그(SWAG·허세)를 전파하고 있는 지코의 S(강점), W(약점), A(기획사), G(목표)를 분석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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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강점) : 랩·프로듀싱·스타성, 삼위일체 아이돌
아티스트형 아이돌이란 말에서 아티스트는 수식어에 해당한다. 매니지먼트사의 기획으로 탄생한 아이돌 중에서는 꽤나 아티스트적이라는 뜻이다. 지코는 '아이돌 치고는'이라는 단서를 굳이 달지 않아도 뛰어난 예술가라는 평가를 듣는다. 국내에서 힙부심(힙합+자부심 : 힙합 우월주의)이 가장 강하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인정받는 게 지코다. 정병욱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실력파 아이돌이 아닌 확고한 아티스트로서의 실력을 힙합계 내외부에서 모두 인정받고 정체성과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했다.
지코를 '아티스트' 지위로 올려둔 원동력은 뭘까. 황선업 음악평론가(음악웹진 'IZM' 필자)는 "탁월한 프로듀싱 역량과 수준급 래핑, 타고난 스타성의 삼위일체"라고 답했다. 랩을 소화하는 능력은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최고로 꼽혀왔으며, 프로듀싱 범위는 힙합에서 발라드, 리듬앤드블루스(R&B)로 확장되고 있다. 황 평론가는 "블락비 노래 '토이', 솔로곡 '아티스트', 아이유와 함께한 '소울메이트'는 장르적으로 상이한 곡이었다"며 "그런데도 모두 일정 퀄리티를 유지한다는 건 음악에 대한 포용력이 넓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곡가로서의 '스타성'은 음원 차트에서 쉽게 확인된다.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 지니뮤직에 2015년부터 올해까지 나온 지코 대표곡 10곡의 순위 차트 분석을 의뢰한 결과, 9곡이 122일 이상 100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즉 1년 중 아무 때나 음원 앱을 켜서 'Top100 재생하기'를 누른다면, 그중 2~3곡은 지코가 작곡한 노래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김반야 음악평론가(음악웹진 'IZM' 필자)는 "탈아이돌 래퍼이자 아이돌급 음원 파워를 가진 자타가 인정하는 실력 있는 래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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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약점) : 강펀치도 자꾸 맞으면 덜 아파
지코는 펀치라인을 만드는 데 있어 국내 최강자다. 그가 작사한 어떤 노래의 가사를 들여다봐도 허를 찌르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계속 날 깎아내려 봤자/더 멋지게 조각돼"('터프 쿠키'), "별점 같은 걸 왜줘/난 스타 반열에 오른 지 오래전"('날') 같은 언어유희를 한 곡에서도 몇 줄씩 쏟아낸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스타일이 펀치라인의 남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너무 독창적인 표현이 많아서 자연스러운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병욱 평론가는 "펀치라인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기는 하나 수준이 나쁘지 않아서 개별적인 곡으로는 개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진다"면서도 "작업물 누적 측면에서 본다면 동일한 스타일의 반복적 소모를 통해 피로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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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기획사) : 높은 지코 의존도, 낮출 수 있을까
지코가 소속된 KQ엔터테인먼트(레이블 세븐시즌스 보유)는 블락비 외 아이돌 그룹이 없는 회사다. 블락비를 통해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사 중 하나로 부상했지만, 지코의 소속팀 탈퇴설에 회사가 들썩일 정도로 아티스트 1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에 이 회사는 이달 24일 신인 보이그룹 에이티즈(ATEEZ)를 출격시킨다. 인기 프로듀서이자 KQ엔터 소속 가수인 이든에게 데뷔 음반 전곡을 프로듀싱 맡기며 회사 내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블락비처럼 개개인 역량을 키워주는 한편, K팝 아이돌의 트렌드를 따라 '칼군무'는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와 맺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도 본격 공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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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목표) : 다작과 걸작, 두 마리 토끼 잡기
그는 최근 워너원, 구구단 세정 등 후배들에게 곡을 주며 프로듀서로서 도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곡을 단지 줬을 뿐만 아니라 음원 차트 성적도 좋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김반야 평론가는 "보도자료용 작곡돌(작곡하는 아이돌)이 아니라 프로듀서 능력까지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고 호평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지코가 아이돌 사이에 '프로듀서형 아이돌'로 경쟁을 촉발해 K팝의 상향 평준화를 이끌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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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개별 싱글의 퀄리티에 비해 앨범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보다 분명한 방향성을 갖추고,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평론가는 "2015년 하반기부터 조금 더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로 음악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전체를 바라보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선업 평론가는 "지코는 창작 감각이 한껏 올라와 있는 상태에서 작업물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한 바 있다"며 "하지만 창작에 에너지를 급하게 다 쏟아붓다 보면 퀄리티가 떨어지는 우려가 있다. 작품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작업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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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