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윤경제연구소 소장)은 “현재 한국경제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기국면”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산업과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등이 모두 참여하는 위기대응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소장은 지난 8일 ‘기업발 경제위기’와 관련해 매일경제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우리경제는 중대한 위기를 맞이했지만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더 큰 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는 금융위원장과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위기 국면 타개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방금 전에도 1100명을 감원하는 등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한창인 한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고 왔다”며 기업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지금 한국 경제는 위기인가
▲위기라는 말은 쓰는 사람이나 목적에 따라서 여러 가지 뉘앙스를 가진다. 위기를,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나 발전을 위해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면 지금은 위기다.
- 어떤 점에서 위기인가.
▲우리 경제를 둘러싼 주변환경은 거의 최악이다. 대외적으로 미국 금리인상이 올해 안으로 한 번은 오지 않겠느냐 하는 위험에 중국의 하드 랜딩(경착륙) 위험이 있다. 그리스 사태 등 유럽 재정위기 역시 아직은 심각하게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높은데 글로벌 수요가 줄어 수출이 어렵다. 수출이 부진한 만큼 내수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대내적으로는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 특히 중국이 심각하다.
▲매년 학교에서 쏟아지는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한 중국의 최소 성장률이 7%라고 했는데 (발표와 달리) 5%밖에 안 됐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가 항상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이 워낙 큰 리스크로 다가오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처럼 자원이 부족하고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유의해야 것은 경쟁은 중국이나 일본하고만 하는 게 아니다. 중국 리스크 사라지면 언제 또다른 경쟁자가 나타날지 모른다. 경각심과 긴장을 언제나 일상화해야 한다.
- 기업과 가계 부채문제가 심각한데.
▲특히 중소기업이 심각하다. 자산규모 하위 25% 기업의 레버리지 비율이 상승하고 있고 이자보상배율이 악화되고 있다. 가계부채 역시 소득 1분위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보면 주택가격이 최대 20% 하락할 경우 고위험가구수가 증가한다고 나와 있다. 주택가격이 20% 이상 하락할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 좀비기업이 우리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좀비기업은 있었다. 정도와 양의 문제지. 좀비기업이 정리가 안 되고 남아 있는 이유는 위기가 눈앞에 닥치지 않으면 선제적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거지. 곪아터져서 문제가 돼야만. 기업만 나무랄 수 없다. 주주, 채권자, 기업자신, 정책당국 등 이른바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이해관계자) 어느 누구도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괜히 나섰다가 어떤 망신을 당할지 몰라서다. 일종의 신드롬(변양호 신드롬) 같은 것들이 우리 몸에 와닿아 있어서 좀비기업이 정리가 안 되는 것이다.
- 좀비기업 정리와 관련해 채권자인 은행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는 자본잉여국이 아니다. 고속철 사업이나 대규모 엔지니어링 사업에서 중국과 일본에게 자본력 면에서 열세다.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 나고 있지만 아직은 기업에 필요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펀딩해와야 한다. 정부의 암묵적 보험 덕에 유리한 조건에 자금을 들여와 기업에 지원하는 원활한 자금순환이 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산업은행 민영화는 큰 실책이다. 당시 기업들의 걱정이 많았다. 신용 빌려오려면 훨씬 나쁜 조건으로 하게 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정책금융공사와 합쳤지만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리드할 역할을 산은과 수은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 조직과 인사 면에서 고질적인 문제도 있다.
- 산업별 구조조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얘기다. 경기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부침이 있는데 어떤 산업을 평가할 때 불황이 일정한 경기 변동에 따른 것인지 장기적인 추세인지 판단하고 장기적 추세라고 하면 서둘러 구조조정하는 게 맞다. 특히 철강과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업종은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특화·전문화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게 실업을 수반하는데.
▲실업급여 같은 사회안전망, 노동시장 유연성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그렇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이유는 노동 유연성 때문이다. 대기업이 많게는 수만명을 예사로 자르지만 승복한다. 반면 한 직장에서 쫓겨나면 끝난다고 생각하니 강성노조가 죽기살기로 덤벼든다. 사회안전망, 노동시장 유연성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두려워서 구조조정을 안 하면 남아 있는 직원들까지 다 날아간다. 경제는 가혹한 거다.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게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기 때문에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실업이 무서워서 구조조정을 안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 구조조정은 누가 해야 하나.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수권받은 정부다. 미국도 위기에 처하면 정부가 가차없이 나선다. 개발시대의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 많은 문제를 야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하는 산업질서 재편 과정에서 굉장한 마중물 역할을 했다. 시장 기능이 존중되는 국면이지만 오히려 나설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 채권자, 주주, 기업 자신 등 이해관계자들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객관적이고 투명한 구조조정의 틀을 짜줘야 한다. 한 부처가 못하고
[특별취재팀 = 노영우 차장 / 박준형 기자 / 전범주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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