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부품가격을 낮추고 부품 산업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대체부품 인증제’가 시행 1년도 안돼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따라 소비자들이 싼 가격으로 차수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일부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으로 무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지난 19일 법안소위를 열고 완성차 업체의 부품 ‘디자인권’ 효력 축소를 골자로 한 ‘디자인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폐기했다. 개정안에는 완성차업체가 자동차 외장 디자인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보유할 수 있는 기간을 20년에서 3년으로 크게 단축시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산자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부품을 비싸게 사는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디자인권 폐지 외에도 다양하니 다른 방식을 검토해보자는 취지”라고 폐기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디자인보호법이 바뀌지 않으면 생산가능한 대체부품 수가 크게 줄어든다”며 “대체부품 활성화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정부는 20일 한국자동차부품협회 주관으로 ‘대체부품 인증제 설명회’까지 열어 대체부품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이같은 노력이 빛을 잃은 모양새다. 한 중소 부품업체 관계자는 “이제 대체부품 산업은 물건너 간거나 다름없다”며 “자동차회사가 언제 디자인권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할지 모르는데 누가 대체부품을 만들겠나”라고 반문했다.
대체부품이란 완성차 업체가 차를 만들때 사용한 부품과 거의 동등한 품질을 가졌다고 정부공인기관으로부터 인증받은 부품이다. 유럽의 경우 자동차를 수리할 때 사용하는 부품의 50% 이상이 대체부품이고 미국도 대체부품 사용비중이 35%를 넘을 정도로 일상화돼있다.
선진국에서 대체부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대체부품은 완성차 업체들이 공급하는 순정품(OEM부품)에 비해 유통구조가 단순하다.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있다. 특히 수입차 부품같이 가격이 비싼 부품은 가격 인하 효과가 더 크다.
자동차부품협회 관계자는 “BMW 530i 모델의 펜더 부품가격은 순정품이 44만8300원인 것에 비해 대체부품은 21만8650원으로 49% 싸다”며 “대체부품 가격이 순정품에 비해 30~50% 가량 저렴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체부품이 활성화되면 중소 부품업체들이 자동차 부품 시장에 참여해 산업 규모가 커진다. 대체부품을 활용한 튜닝산업도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지난해 대체부품 제조를 허용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만들어 지난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금까지 대체부품으로 등록된 부품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며 등록됐다하더라도 실제 판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걸림돌은 디자인보호법에 명시된 디자인권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를 출시할 때 범퍼커버, 펜더, 본네트, 헤드라이트, 도어판넬, 라디에이터 그릴 등 주요 외장부품 디자인을 자신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등록한다.
때문에 대체부품 제조사는 디자인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 부품을 생산하거나 완성차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디자인권이 등록된 부품을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가 디자인 사용을 허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허정철 한국튜닝산업협회 사무총장은 “자동차 수리의 70% 이상이 외장부품을 사용해 이뤄진다”며 “완성차 업체들로선 이 시장을 빼앗기기 싫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연합(EU) 9개국과 호주에서는 정비용 자동차 외장부품에 대해서 디자인권 침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법률을 통해 수리목적의 외장 대체부품에 대한 디자인권 침해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자동차 업체의 ‘탈적 디자인권 설정’을 막고 부품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일부 정비용 외장부품에 대해 디자인권 존속기간을 30
그간 완성차 업체들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체부품으로 인한 것인지 순정품으로 인한 것인지 구분이 모호해져 피해자가 보상을 받기 쉽지 않고 각종 짝퉁 부품이 범람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체부품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김동은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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