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은 과학계의 최고 명예다. 그렇다면 노벨과학상을 탄 과학자들은 자기의 연구 일생 중 어느 시기에 번뜩이는 영감에 처음 마주치게 됐을까.
매일경제신문은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등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 182명의 수상 시점의 나이와 연구성과 발표 시점 나이를 조사했다. 이들이 상을 받은 평균 나이는 64세였지만, 수상의 대상이 된 연구성과를 발표한 시점은 평균 39세로 나타났다. 이후 20년 이상의 검증과정을 거쳐 노벨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카지타 타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그가 40세이던 1998년 중성미자의 실체를 확인했다. 같은 해 화학상 수상자인 아지즈 상카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역시 37세에 DNA 복구과정을 밝히고 69세에 상을 받았다. 2010년 물리학상을 받은 러시아 태생의 콘스탄틴 노보셀로트가 차세대 신소재 그래핀을 발견한 나이는 30세였다.
과학자들이 통상 20대후반~30대초반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를 감안하면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략 10년 이내인 30대에 가장 창의적이고 또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중국 전통의학자 투유유는 지난해 85세의 나이로 생리의학상을 받았지만, 연구성과를 낸 시점은 39세였다. 당시 베트남전에서 극성을 부리던 말라리아가 중국으로 넘어오자, 중국 정부는 30대의 젊은 연구원인 투유유에게 연구책임을 맡기고 치료제 개발의 특명을 내렸다. 박사학위나 해외유학 경험이 없던 그는 190여 차례 실패를 거듭하는 끈기와 열정으로 세계적 성과를 끌어냈다.
창의성과 열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30대 젊은 연구자들이 자유롭고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 기초과학 강국들이 젊은 과학자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이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찾아간 영국 기초과학의 산실인 프랜시스크릭연구소는 런던 중심가의 교통 요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런던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6개 지하철 노선이 합쳐지는 킹스크로스역과 유럽으로 곧바로 갈 수 있는 유로스타가 통과하는 세인트판크라스역이 있다. 벨기에 브뤼셀이나 프랑스 파리까지 단숨에 갈 수 있다.
우수한 해외 과학자 유치는 물론 연구소 소속 젊은 과학자들이 주변국의 과학자들과 편하게 네트워킹을 쌓도록 지원하기 위해 선택된 입지이다. 남쪽으로는 걸어서 10분정도 거리에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과 유니버시티오브런던 등 유수의 대학 캠퍼스들이 위치해 있다.
이 연구소의 줄기세포·발달유전학 연구그룹리더인 로빈 로벨배지 박사는 “학생, 박사후연구자(포닥), 영 PI(Principa Investigator·연구책임자) 등 젊은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우리 연구소의 목표”라며 “젊은 과학자들을 키우기 위해 논문을 쓰는 법도 가르치고 멘토링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이미 학생 3명의 멘토를 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젊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놀라운 성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한국은 연구자들이 40대가 되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건 잘못된 것”이라며 “40대가 아니라 30대에, 가급적 젊을 때 독립적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소 인근 UCL에서 만난 존 오키프 UCL 세인스버리 웰컴센터 신경회로행동분야 소장은 1971년 뇌의 ‘해마’에 존재하는 ‘장소세포’를 발견해 동물이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밝혀냈다. 그는 신진과학자이던 32세에 미로에 가둔 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을 통해 해마가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획기적인 내용이었지만 연구결과를 내놨을 때만해도 학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워낙 생소한 분야였다. 오키프 소장은 “처음엔 국제학술지에서 여러차례 게재를 거절당하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연구에 매진한 끝에 2014년 노벨생리학상을 받을 수 있었다”며 소회했다.
오키프 소장은 “내가 흥미를 가진 분야에 젊었을 때부터 맘껏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 덕분에 노벨상까지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케임브리지대 인근 여러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한인 과학자들도 젊은 과학자와 기초과학을 중시하는 영국의 문화를 부러워했다. 암 연구소인 거던 인스티튜트의 한남식 박사는 “영국은 기초분야를 매우 중시하고 기초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한 학생들의 자부심도 매우 강하다”며 “케임브리지대만 하더라도 공학 등 실용학문에는 유학생이 몰리는 반면 생물학, 수학 등 기초분야에는 영국 학생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의학연구소의 원혜란 박사는 “연구를 할 때 같이 일하고 성장하는 ‘그룹’이란 인식이 강하다”며 “연구장비 담당자도 따로 있을 정도로 시스템이 잘 갖
[서울 = 원호섭 기자 / 런던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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