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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창업 시장. 하지만 이 속에서도 언제나 대박 집은 존재했습니다. 김강삼 대표는 그 어려웠던 IMF 때에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창업 성공을 이루었고, 그 이후에도 손대는 것마다 큰 성과를 거뒀는데요, 장사의 달인으로 성공에 성공을 거두던 그가 이제는 수제 맥주 제조업에 도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30년 전 평범한 양복 재단사에서 연 매출 43억 원을 기록하고 있는 수제 맥주 기업의 CEO로 변신한 김강삼 대표. 세븐브로이 김강삼 대표의 성공비결을 MBN ‘성공다큐 최고다(최고 경영자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 제작진이 직접 들어봤습니다.
Q. 맥주 제조업을 시작하기 전, 어떤 창업을 하셨나요?
양복점부터 횟집, 레스토랑, 하우스 맥주 전문점 등을 창업했습니다. 20대 때에는 양복 재단 일을 했는데요,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에서 13년 동안 양복 만드는 일을 했죠. 하지만 90년 대, 대량 산업이 시작되면서 양복 재단 일은 사양 산업이 되었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 길로 양복 재단 일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죠. 서울에 도착해서 제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은 횟집이었습니다. 큰 대형 횟집을 차려서 운영했는데, 그 어렵다던 IMF 때에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횟집에서 성공을 거두고 바로 근처에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을 창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대박이 났죠. 1년 만에 건물 한 층을 매입하고, 투자금 회수까지 했으니까요.
Q. 손대는 것마다 성공을 이루셨는데요, 그 비결이 무엇이었나요?
처음 횟집을 할 때는 박리다매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사람들이 외식을 많이 하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음식을 모두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내놨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린 아이들부터 노소동락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짰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회를 잘 못 먹잖아요. 그래서 저는 탕수육을 메뉴에 추가했습니다. 두 번째 스라이라운지 레스토랑 때에는 장소 선정을 하는 데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처음 그 곳에 제가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었습니다. 발전이 되지 않은 곳이 주변에 온통 논밭이었으니까요. 유동인구가 적어서 금세 망할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의 탁 트인 공간이 너무 좋더라고요.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사업을 밀어붙였죠.
Q. 그렇다면, 창업을 하면서 위기를 겪은 적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저라고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2년도에 대기업과 손을 잡고 인천공항에 레스토랑을 수주하게 됐습니다. 바로 직전에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도 창업해서 많은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당연히 잘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오픈을 하고 나니 손님들이 오지 않는 거예요. 1일, 2일.. 5일이 지나도록 손님이 들지 않자 뭐가 문제일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공항은 국내인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곳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해외로 나갈 때 뭘 먹고 싶을까요? 양식보다는 한식이 아닐까 생각했죠. 그래서 한식 메뉴를 추가하고 간판을 한글로 다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때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어떻게 일주일도 안 된 간판을 교체하느냐고 만류했지만 그 때 그렇게 과감하게 결정하지 않았다면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 같아요.
Q. 수제 맥주 제조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인천공항 레스토랑까지 성공을 하고 나서 2002년 후반, 또 다른 제안을 받았습니다. 서울역에 KTX가 들어설 때였는데요, 거기에 600평 규모의 매장을 확보 중이었던 대기업에서 그곳에 맥주 매장을 차려달라고 한 겁니다. 막막했죠. 적은 규모도 아니고, 600평에 맥주 매장을 차려야 한다니까요. 일반 맥주로는 승부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독특한 맥주를 찾아다녔죠. 그러던 중 2002년 월드컵을 맞아 하우스 맥주 규제가 완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수제 맥주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가장 먼저 수제 맥주 기계와 제조업자를 구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수제 맥주가 유행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독일까지 직접 다녀왔죠. 그렇게 수제 맥주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한 겁니다.
Q. 대기업 맥주가 양분하고 있는 맥주시장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직접 발로 뛰는 것. 그것이 저의 사업 노하우입니다. 저는 ‘이거다!’ 하면 바로 도전하는 스타일인데요, 국내 맥주 시장은 이미 대규모 기업의 제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틈새시장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유럽 지역의 특색 있는 맥주처럼 개성 있는 맥주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또 공산품과 달리 수제 맥주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업 초기, 사람들에게 낯선 수제 맥주를 알리기 위해 이태원으로 직접 나가서 홍보를 했습니다. 무료 시음회를 열어 우리 맥주 맛을 먼저 알리기 시작한 거죠. 당시에 반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 동안은 먹어보지 못한 맥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갖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지금은 대형마트에서도 저희 맥주를 유통하고 있죠.
Q. 서울에서 횡성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 왜 멀리 횡성까지 공장을 차린 건가요?
처음에 공장 부지를 선택하는 데에 오랜 시간을 들였습니다. 맥주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물이거든요. 맑고 청정한 지역의 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공장 자리를 만나게 되었고,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보고 이곳이 청정지역이다 싶어 자리를 잡게 된 겁니다.
Q. 앞으로의 사업 목표는 뭔가요?
저희는 5년 전부터 계속 맥주 공장을 조금씩 증설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또 하나의 수제 맥주 제조 공장을 설립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독일처럼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