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산 대형변압기((Large Power Transformer)에 대해 지난해 예비판정보다 20배나 더 높은 반덤핑 관세 부과 결정을 내렸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보복조치가 확대되는 가운데 미국까지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대응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9일 현대중공업은 미국 상무부로부터 대형변압기에 61%의 반덤핑 관세 최종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상무부는 3.09%의 예비판정을 내렸는데 최종판정에서 반덤핑 관세율이 20배나 증가했다. 반면 효성은 예비판정(1.76%)보다 다소 높은 2.99%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현대중공업 효성 일진전기 등 3개사가 미국에 수출하는 대형변압기 규모는 연간 2억달러에 달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 예비판정과 비교할 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관세율을 부과받았다"며 "미국 국제무역법원(CIT) 제소 등 법적인 절차를 통해 관세율 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불복 의사를 밝힌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반덤핑 관세 폭탄을 맞은 이유는 소명 자료 제출이 불충분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강화된 통상규정인 AFA(Adverse Facts Available, 불리한 가용정보)를 적용했다는 지적이다. AFA는 기업이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피제소 기업에 가장 불리한 반덤핑·상계관세율을 적용하는 규정이다. 대미 통상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AFA 적용을 더 강화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AFA는 오바마 정부에서 발효됐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적용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라며 "중소기업의 경우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소명자료를 모두 제출하기 어려워 AFA 피해 속출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FA에 따른 관세폭탄 사례는 이미 지난해부터 한 두건씩 나오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9월 부식처리방지강판에 47.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았는데 미국 정부는 자료 불충분을 이유로 AFA를 적용했다. 포스코도 AFA에 따라 열연강판에 57.04%의 상계관세 폭탄을 부과받았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 금호석유화학이 AFA 적용을 받아 합성고무(ESBR)에 대해 44.3%의 반덤핑 예비판정을 받았다.
이동복 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AFA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평소에 거래 자료를 충실하게 준비해야 피해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자료를 제대로 제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조차 잘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생각하지만 인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관련 업계와 통상 전문가들은 이달부터 줄줄이 예고된 미국 정부의 반덤핑 최종관세 결정을 주목하고 있다. 당장 이달 말 포스코 후판(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에 대한 최종 판정이 나온다. 포스코는 지난해 11월 6.82%이 반덤핑 관세 예비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11.63%와 44.3%의 반덤핑 예비판정을 받은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 합성고무에 대한 미국 상무부 최종 판정도 5월께 나올 예정이다. 올 1월 각각 3.96%와 5.75%의 예비판정을 받은 애경화학과 LG화학 가소제(DOTP)에 대한 최종 관세율은 오는 6월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김건숙 KOTRA 전문위원은 "지난해 6월 오바마 정부에서 발효한 무역특혜연장법에 따라 상무부의 AFA 적용 재량권이 강화됐다"며 "앞으로 예고된 반덤핑 최종판정에서 AFA가 얼마나 적용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주형환 산업통장자원부 장관은 8일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과 한미 통상장관 회담을 갖고, 두 나라 간 통상과 산업협력을 위한 채널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번 회담은 로스 장관이 취임 이후 가진 첫번째 외국 각료와의 회담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주 장관과 로스 장관이 체결 5주년을 맞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 간 경제협력의 기본적인 틀로서 교역과 투자 확대 등에 상호 호혜적으로 기여해 온 객관적인 성과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두 나라는 한미 FTA의 충실한 이행, 에너지·기계장비 등 제조업 분야 교역 확대, 반도체·철강 구조조정 공조, 첨단 산업분야 협력 강화를 통한 제3국 공동 진출 등에도 합
주 장관은 지난 5~8일 방미 기간 중 로스 장관 외에 미국 의회의 주요 통상정책 승인 권한을 가진 오린 해치 상원 재무위원장과 론 와이든 간사, 래리 호건 매릴랜드 주지사, 존 허츠만 아틀랜틱카운슬 회장과도 만나 통상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고재만 기자 /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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