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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만장학회 설립자 고 이천득 전 삼천리 부사장 |
27일 홍익대학교에서 열린 천만장학회 30주년 기념식에서 김 모씨는 자신의 사연을 담은 감사의 편지를 낭독했다. 김 씨는 "장학생으로 다양한 워크샵 활동에 참가했는데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받은 도움을 다시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나눔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더욱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삼천리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천만장학회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데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이천득 삼천리 전 부사장의 30주기이자 그가 인재육성을 향한 신념으로 아우인 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과 함께 설립한 천만장학회의 설립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날 이 회장의 모교인 홍익대학교에서는 후학 양성을 위한 '이천득관'이 문을 열었다. 기존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중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천득관'은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미대생들을 위한 주요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이 전 부사장은 삼천리그룹 창업주 고 이장균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할 만큼 탁월한 예술 감각은 물론 음악,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재다능했다. 삼천리에 입사해 경영활동에 매진했으며,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전도유망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서른다섯, 이른 나이에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로 그는 높았던 꿈과 열정을 다 펼쳐보지도 못한 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라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했던 고인은 인재 육성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평소 신념을 세상에 남기고자 동생인 이만득 회장과 뜻을 모아 공동으로 사재를 출연해 천만장학회를 설립했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2주전인 1987년 5월, 아픈 몸을 이끌고 천만장학회의 출범식을 찾는 등 천만장학회를 위해 마지막 투혼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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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천득 삼천리 전 부사장(오른쪽 첫째)이 이장균 선대회장(오른쪽 둘째)과 함께 배관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 = 삼천리] |
천만장학회는 장학생 입장을 세심하게 배려한 차별화 된 운영방식으로 눈길을 끈다. 어려운 형편으로 대학 진학의 꿈을 잃어가는 학생들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미리 선발하여 고 3 때부터 대학 졸업 시까지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학생들은 대학 등록금 부담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어 학업효율이 더 오르고 원하는 대학으로의 진학 가능성도 보다 높아졌다.
장학생들도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나누기 위해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습 멘토링과 정기적으로 복지시설을 방문해 식사, 청소, 목욕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30주년을 맞은 천만장학회는 설립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나눔과 상생의 정신을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고인의 추모전시회 '동행(同行)'이 9월 27일부터 10월 16일까지 고인이 생전 예술가의 꿈을 꾸며 학업에 매진했던 서울 홍익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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