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 왓슨도 데이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 정보인지 모르게 비식별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보안 등을 잘 준비한다면, 세계최고 수준인 우리 의료정보를 공유하고 연구하면서 빅데이터 시대를 선점할 수 있을 겁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전국 주요 병원 원장과 연구부원장들을 만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정책적 지원을 약속했다. 과기정통부는 1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병원에서의 바이오 연구·창업 활성화를 위해 장관 주재로 현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 바이오+ICT 융합 디지털 헬스케어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신기술을 개발하고 키울 수 있는 중요한 현장이 병원이라는 공감대에서 마련됐다.
유 장관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구글이나 IBM 등 글로벌 IT공룡들이 산업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고, 의료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병원 중심의 연구·창업 활성화를 강조해왔는데,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하지 않나. 오늘 현장 목소리를 듣고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사업화하고 의료기기를 개발해 국산화하기 위해 어떻게 지원할 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대통령 주재 회의는 물론 총리실 차원에서 챙길 정도로 규제 완화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단순한 규제완화가 아니라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등 패러다임이 확실히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20여 명의 병원장, 연구부원장들은 한 목소리로 연구개발(R&D)과 함께 하는 선제적 규제를 통한 혁신적 연구에 맞춤형 지원을 해줄 것과 연구 성과의 기술이전을 막는 규제를 해소해줄 것을 적극 요청했다. 의사들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도 많고 기술을 사업화하고 싶어도 특허와 지적재산권 부터 투자유치까지 창업할 엄두가 나지 않는 실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병원 연구성과 사업화를 전담하는 기구를 병원 차원이나 정부 차원에 두고 지원한다면 훨씬 더 창업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조언이다.
병원장들은 특히 '비영리 연구기관'이라는 족쇄가 사업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재찬 경북대병원 연구원장은 "병원은 의사들에게 가장 호의적인 기관이고 기술력을 평가할 능력도 있다. 의사들이 바이오벤처를 창업하면 첫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주체라는 뜻"이라며 "좋은 연구성과를 내고도 자회사를 설립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사업화에 좌절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규제완화를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임영혁 삼성서울병원 연구부원장도 "삼성서울병원은 재단법인 공익법인 사회복지법인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있어 사업화가 가장 어려운 병원 중 하나"며 "정부가 이 조항을 조금만 풀어줘도 좋은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경쟁력 있는 바이오벤처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기 등을 직접 개발하고도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개탄도 나왔다. 박경수 서울대병원 연구원장은 "한국전기연구원과 공동으로 내시경 회사를 만들었는데, 외국 파트너들이 '너희 병원도 쓰고 있느냐?'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며 "개발한 사람이 안쓰는데 다른 병원이 쓰겠나, 이 부분 규제를 풀어달라고 했는데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을지대의료원 원장도 "열심히 의료기기를 개발해놓아도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기가 너무 힘들더라"며 "지금까지 병원과 우리 기업들이 개발한 의료기기만 모아놓아도 수술장 하나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오죽하면 이런 의료기기를 사용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 수술장을 하나 만들면 어떻겠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의 사업화 우수 사례도 발표됐다.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고 항암제 신약개발에 활용하는 웰마커 바이오, 시술과 수술에 활용할 환자 맞춤형 보형물을 제작하는 애니메디솔루션, 조기 암 진단용 스마트내시경을 만드는 에디스바이오텍, 시야장애자를 위한 가상현실 콘텐츠를 만드는 딥브레인과 암 치료효과를 높이는 자기조절 방사선 기술을 확보한 예비창업 회사 라덱셀 등이 소개됐다. 강동하 서울아산병원 사업화 지원 실장은 "이제 막 창업한 바이오벤처 대표로서 예닐곱명의 소대원과 최전방에서 싸우는 소대장의 심정"이라며 "병원들의 법인 형태가 제각각이라 주무관청과 제도 등이 상이하고 적용받는 규제도 다 다르다. 이런 제도를 아우르고 통합할 수 있는 조직이 있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유 장관은 "오늘 나온 의견을 적극 반영해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산업자원통상부 등 관계부처와 같이 협의해나가겠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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