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이에 일부 가담한 행위를 무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고 간접적인 이익을 얻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룹 총수로서 계열사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한 점도 인정된다."
롯데 총수 일가의 경영비리와 관련한 1심 선고 공판에서 법원이 신 회장에 대한 판결에 앞서 양형 이유를 설명하자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내내 정면만을 응시하던 신 회장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표정에 변화가 없었지만 법원 도착 때부터 역력했던 긴장한 표정이 다소 누그러진 듯했다.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부장판사 김상동)는 신 총괄회장과 차남인 신 회장,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진행했다.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에 대한 선고도 함께 내려 사실상 롯데 총수 일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내려졌다.
재판이 열린 법원청사 서관은 오전부터 롯데 총수 일가 선고를 방청하기 위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오후 1시 30분부터 방청권을 배부하기로 했지만 일찍부터 현장을 찾아 가방 등 소지품으로 미리 줄을 서두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이날 오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공판도 이뤄져 취재 열기가 더욱 고조됐다.
신 회장은 오후 1시 50분께 법정에 입장했다. 검은색 정장 차림에 파란색 넥타이를 맨 신 회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형인 신 전 부회장과의 사이에는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신 전 부회장을 위한 통역사가 자리했다. 반면 신 회장은 통역 없이 재판에 임했다.
신 회장 뒤편으로 누나인 신 전 이사장과 채정병 전 롯데그룹 정책본부 지원실장(사장),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사장)이 앉았다.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은 출입구 때문에 조금 떨어져 있었다.
고령 탓에 휠체어에 의지한 채 보좌진의 부축을 받아 신 총괄회장이 법정에 들어서자 신 회장이 이를 지긋이 바라보기도 했다. 신 총괄회장은 재판부 맞은편에 자리했다.
오후 2시. 재판부가 입장하면서 공판이 시작됐다. 이번 사건은 기소 범위가 넓고 쟁점이 많아 재판부는 A4용지 54페이지로 요약한 판결문을 1시간 40분가량 읽어내려 갔으며, 신 총괄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일시 퇴장했다가 오후 3시 20분께 양형 이유와 주문 선고 때 자리했다.
신 회장은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이었으며, 롯데 주요 임원진은 간간히 메모했다. 서씨는 출두 시 썼던 검은 뿔테 안경을 벗은 채 미동없이 판결문 낭독을 경청했다.
재판부가 선고를 내리는 순간에도 신 회장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반면 신 총괄회장은 신 회장의 양형 이유가 낭독되는 중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중얼거려 보좌진들과 함께 퇴장했다가 10분 정도 뒤 주문 선고 때 다시 들어왔다. 신 총괄회장에게 유죄가 내려지자 신 총괄회장은 강하게 반발하며 일시적으로 소란이 있기도 했다.
이날 법원은 신 총괄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35억원, 1000일간의 노역을 선고했다. 건강 상의 이유로 법정구속은 피했다. 신 회장은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신 전 이사장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서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내려졌다.
채 전 사장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신 전 부회장과 황 사장, 소 사장, 강 전 사장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판결은 오후 3시 50분께 종료됐다. 판결 뒤 신 회장과 신
롯데 운명의 날로 불린 이날 1심 재판은 큰 소란없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검찰 측이 항소 가능성을 언급해 앞으로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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