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8차 토론회`에서 학계 전문가들이 탈원전 국면에서 위기에 봉착한 한국원전의 수출 현황과 대책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의 온기운 공동대표(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원전 수출 기반 붕괴'를 주제로 열린 에교협 8차 토론회에서 이처럼 경고했다. 온 대표는 "최근 원전 시장은 수출국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 원전을 건설하고 발전된 전기를 판매해 자금을 회수하는 구조인 만큼 원전 수출은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탈원전 상황에서 원전을 수출한다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며 "세계 원전 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원전 수출을 통한 결실을 거두려면 정부는 당장 탈원전 정책부터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탈원전 탓에 기존에 성공적으로 수출한 원전마저 결실을 거두기는커녕 기술 유출의 통로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이덕환 에교협 공동대표(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은 한국이 수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신형 가압경수로(APR1400)지만 탈원전 여파로 정비 계약 독점권을 잃었다"며 "바라카 원전의 유지·보수를 맡게 되는 기업은 원전 설계 도면을 비롯해 무제한적인 접근권을 얻게 될 것이고, 한국이 60년에 걸쳐 완성한 APR1400 기술은 인류 공동의 자산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한국은 지난 6월 바라카 원전의 정비 계약을 체결했지만 기간은 5년으로 한정됐다.
한국의 APR1400은 세계적으로 가장 인·허가 절차가 까다로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타 국가 원전 가운데 최초로 설계인증을 획득한 세계 최고 성능의 원전이다. 가격경쟁력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건설사업 입찰 단가를 기준으로 한국 원전의 건설 단가는 ㎾당 3717달러로 5개국 중 가장 낮았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1만1638달러)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고 중국(4364달러)보다도 저렴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금이라도 한국이 60년간 쌓아온 기술력으로 세계 최고로 만든 원전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전력은 2017년 영국 뉴젠의 신규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 대상자에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7월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며 "원전의 기술과 노하우는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면서 축적되는 만큼 탈원전 상황에서는 상대국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중단된 신한울 3·4호기의 즉각적인 건설 재개를 통해 원전 도입국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원전을 확대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2020년대 가동 목표로 계획 중인 신규 원전만 111기에 이른다. 검토 단계에 있는 신규 원전도 330기다. 이처럼 수요가 높은 반면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은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세계 7개국 11개사에 불과해 원전 기술 보유국들은 앞 다퉈 원전 수출을 국가 전략으로 앞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온 대표는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토대로 향후 10년간 영국, 파키스탄, 루마니아, 아르헨티나, 터키 등 30개국에 원전을 수출,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정부가 재정적인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역시 국채를 발행해 원전 수출을 위한 외화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최근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범부처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총 31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교수는 "정부는 탈원전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도 원전 수출은 계속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정부 예산만 봐도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원전 산업 생태계가 걷잡을 수 없이 붕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 교수는 "원전 주기기 제작업체인 두산중공업은 탈원전 이후 2400명이 순환 휴직을 하고 있으며 극심한 인력 이탈을 겪고 있다"며 "460여개 협력 업체의 매출 역시 2017년 3700억원에서 내년에는 500억원으로 폭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두산중공업 본사가 있는 창원 지역에서는 한달에 50개 업체가 폐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두산중공업의 주가 역시 탈원전 이전 2만9000원에서 현재 5300원 선으로 폭락했다.
에교협은 이날 "정부가 정말 원전을 수출할 의지가 있다면 탈원전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원전수출지원특별법'을 제정해 협상 주관과 금융 지원, 포괄적 경제협력, 외교협력, 원자력 인재 양성, 인·허가 지원 등을 총괄할 범부처 민관 협력체를 운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이미 세계 일류 기술로 키워 놓은 원전을 버리고 최근 수조원을 들여 소재·부품·장비 기술을 세계 최고로 만들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돈만 주면 요술방망이처럼 기술을 뚝
에교협은 문재인정부가 대선 공약에 불과했던 탈원전 정책을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절차 없이 강행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3월 전국 61개 대학 225명의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다. 원자력, 자연과학, 공학, 사회과학 등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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