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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진 뒤 스크린에 영상이 비춰지고 빠른 템포의 음악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동요된 듯 웅성거리더니 이내 성우 서혜정(49)씨의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케이블 방송 ‘남녀탐구생활백서’ 코너의 내레이션을 맡아 인기를 끈 서씨는 횡당보도 앞에서 음향신호기를 들고 있는 수아(김하늘)를 묘사했다. ‘건너도 된다는 신호를 받았는지 수아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음향신호기가 고장 났는지 신호등은 붉은색이다’, ‘버스가 수아 옆을 지나간다’는 등 인물이 처한 상황을 그림 그리 듯 설명했다.
한국시각장애인협회 주최로 시각장애인들을 초대한 특별 영화시사회. 성우의 해설에 시각장애인들은 일반 시사회 현장과 다름없이 똑같이 웃고 환호했다. 단지 해설에 따라 그 반응이 조금 느렸을 뿐이다.
극중 범죄 현장의 목격자가 된 수아는 경찰과 함께 범인을 쫓는다. 수아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산산조각 낼 정도로 청각과 후각이 발달돼 있는 인물. 목격자 진술을 받는 경찰을 향해 “30대 후반이죠? 점심에 자장면 먹은 것도 알아요”라고 하자 경찰은 “내가 보여요?”라고 놀라고, 영화관은 웃음바다가 됐다.
연쇄살인범이 앞이 보이지 않는 수아 옆에서 그녀를 쳐다보고, 지하철 앞자리에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장면이 설명되자 관객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몰입했다. 몇몇 관객은 궁금증을 가득 담아 옆 사람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추가하곤 했다.
영화의 끝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의 퇴장은 입장과 마찬가지로 조금 느렸을 뿐, 별다른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시각장애인 김기혁(25)씨는 “영화관에 와도 해설이 없어 이해하기 힘들지만 오늘은 재밌고 이해도 쉬웠다”고 좋아했다. 다른 시각장애인 남성(25)도 “보호견은 다른 이들에게 애완견일 뿐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라며 “보호견과의 유대감이 잘 느껴졌고, 우리들의 고충을 잘 다룬 것 같다”고 만족했다.
장애인에게 여전히 먼 문화생활…영화 개봉 전 시사회는 처음
우리나라는 시각장애인 등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돼 있는 영화관이 거의 없다. 장애인들을 위해 한글자막과 화면해설을 지원하는 영화관은 전국 337개 영화관 가운데 20여곳 내외다. 화면 해설을 해주는 상영회도 1년에 몇 차례 없다. 그것도 개봉이 한참 지난 영화를 상영회를 통해서나 볼 수 있다.
‘블라인드’처럼 한국 영화가 개봉하기 전 시각장애인들을 초청해 특별 시사회를 열어 라이브 형태로 화면을 해설해주는 행사는 처음이다. 황덕경(42) 노원복지관 미디어접근센터장은 “장애인을 위한 영화시범 사업으로 1년에 10편 정도 화면 해설 상영회를 열지만 화면을 라이브로 해설하는 것은 처음 시도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2년 ‘전원일기’부터 그동안 1만편의 화면해설 방송에 주축이 된 황 센터장은 장애인을 위해 영화계도 힘을 써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는 “장애인 영화제를 10년째 열고 영화 시범사업도 4년째하고 있는데 배급사와 제작사 등의 협조를 받는 것조차 어렵다”며 “우리도 제작비를 지원할 테니 콘텐츠 제공 협조를 해달라고 해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숨 쉬었다.
그나마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자막 영화 DVD사업’ 협조가 받아들여져 영화 20편을 제공받은 게 조금 나아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문화 기회는 여전히 많지 않다.
한 30대 후반 시각장애인 여성은 “드라마의 경우 방송사가 오전 시간을 할애해 화면 해설 방송을 해주는 경우가 있지만, 영화는 이러 기회가 거의 없다”며 “최신영화는 물론 지나간 영화도 사실상 경험하기 쉽지 않다. 배급에 신경을 좀 더 써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시사회에 앞서 2차례 영화를 보고 나서 화면해설을 한 서혜정씨는 “영화관 구석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류창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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