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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300만 명을 넘는다면?"
배우들은 제작발표회나 언론시사회 등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홍보 자리에서 흥행 공약을 내건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유행이 됐다. 배우들은 '관객을 위한' 이벤트 차원으로 다양한 약속을 하고, 관객들은 조금 더 가까이서 배우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
요즘 한국영화들이 흥행이 잘돼 3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쉬운 것 같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잘 된 영화들은 당연히 이름이 오르내려 관객이 기억할 수밖에 없지만, 흥행이 안 된 잊힌 영화들이 꽤 많다. 공약을 내걸로 흥행이 안 돼 이행하지 못한 공약도 수두룩하다.
30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분노의 윤리학' 제작보고회. MC 박경림의 활기차고 재미있는 진행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모두가 즐거운 듯 했다.
비중이 작았는데도 흔쾌히 출연한 문소리, 지난해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에서 매력을 선보인 곽도원, 뛰어난 연기력을 칭찬받는 조진웅, 배우 김태우의 동생으로 많이 알려졌었으나 이제야 자신의 연기를 인정받고 있는 김태훈 등이 유쾌한 면을 선보였다.
문제는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공약을 요청했다. 박명랑 감독은 "흥행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답을 주저했다.
다음 차례 김태훈의 공약은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그는 "관객이 300만 명이 되면 (소녀시대의) 태연 씨와 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이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질문하기에 앞서 "실시간 검색어에 분노의 윤리학이 떴고, 특히 곽도원 씨의 태연 발언이 눈길을 끈다"고 한 말에 대해 자신도 재밌게 응하려고 한 말로 보인다. 앞서 곽도원이 "태연 씨와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해 시선을 끌었기 때문. 하지만 방향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를 수습하려 한 건 조진웅이다. 그는 "300만 명을 돌파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스태프들과 공개적으로 술을 마시겠다. 지나가던 관객이 들어와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태훈은 끼어들며 "300만 명을 넘으면 조진웅이 마련한 자리에서 소녀시대와 식사를 하겠다. 소녀시대가 원하면 멤버 모두와 밥을 먹겠다"고 엉뚱한 공약을 이어갔다.
이어 곽도원은 조진웅과 함께 이 술자리 비용을 내겠다고 했고, 박 감독은 2차로 노래방 비용을 내겠다는 뜻을 전했다. 문소리는 "300만 명이 넘으면 맛있는 것을 사서 (군 복무 중인) 이제훈 면회를 가겠다"고 했다.
영화를 힘들게 다 같이 찍었으니 흥행이 되면 당연히 스태프와 제작진, 배우들이 서로 좋아하고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그들의 술자리에 소녀시대를 부르겠다고? 연관관계도 없는데다 상대방의 동의도 없이?
김태훈의 공약(?)에 비하면 조진웅과 문소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좋게 생각해보면 의무경찰의 사기도 올릴 수 있으니 그나마 잠재 관객을 위한 이벤트처럼 보인다. 조진웅의 발언은 관객들도 잊지 않고 챙기겠다는 생각도 읽힌다.
배우들을 포함해 영화에 참여한 이들이 흥행해 즐겁게 파티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관객과 팬들 덕분이다. 하지만 이날 공약은 팬들를 위한 것과는 멀게만 느껴진다. 관객으로서 좋아할 만한 공약을 내걸어야 모두가 좋다. 물론, 영화가 흥행이 되고 관객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분노의 윤리학' 파티에 김태훈이 소녀시대를 데려오면 최상일 것이다.
첫 문을 연 영화에 초를 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생각 없는 몇몇 발언인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한편 '분노의 윤리학'은 미모의 여대생 살인사건에 나쁜 놈(이제훈), 잔인한 놈(조진웅), 지질한 놈(김태훈), 비겁한 놈(곽도원), 그리고 나쁜 여자(문소리)가 얽히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본색과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평범한 얼굴 밑에 이글거리던 분노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파국을 희극적으로 그려냈다. 김지운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박 감독의 데뷔작이다. 2월 21일 개봉 예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