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바꼭질’을 향한 시선은 개봉 전까지는 긍정보다 부정으로 저울의 추가 기울어져 있었다. 지난해 SBS 연기 대상을 탄 손현주(48)의 말을 빌자면, 이 영화에는 없는 게 많았다. 톱스타도 없고, 아이돌도 없었다.
![]() |
‘숨바꼭질’에는 자신을 수많은 개미들과 비교했던 ‘연기의 신’ 배우 손현주가 있었다. 손현주는 “‘연기의 신’이라는 칭호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선배들에게 맞아 죽는다. 요즘 ‘꽃보다 할배’가 인기인데 그 선배들한테 맞아 죽을지 모른다”고 손사래쳤다. 또 “나뿐만 아니라 문정희와, 전미선, 또 아역들 등 숨어있는 배우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지난 14일 개봉해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숨바꼭질’의 주인공 손현주를 지난 20일 만났다. SBS 월화극 ‘황금의 제국’ 촬영으로 바쁜 그는 자신의 주연 영화를 사랑해준 관객에 고마움을 표했다.
영화가 흥행이 되서 다행이지만 사실 손현주는 두려웠다. “방송을 많이 한 손현주가 영화에 나왔는데 ‘영화가 잘못됐다’, ‘실패했다’라는 말이 나오면 또 다른 영화에 도전하는 사람이 부담될 것 같았다. 내 생각은 손익분기점만 넘겼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고 기억했다. 영화는 개봉 4일 만에 손익분기점 140만명을 넘었다.
손현주는 “정말 감사하다. 손익분기점 넘었으면 ‘그럼 됐다’고 했다.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웃었다.
그는 “짜임새 있는 책(시나리오)의 승리”라며 각본을 쓴 신인 허정 감독을 칭찬했다. 23년간 연기해 온 손현주는 허 감독을 위해 한 두가지 정도의 디테일만 챙겼을 뿐이다.
“허정 감독이 얼굴은 꿈많은 미소년처럼 생겼는데 생활적인 두려움이나 공포를 이렇게 쓸 수 있나 감탄했죠. 예산이 적었지만 시나리오가 탄탄했던 게 관객들 정서에 맞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얘기한 건 몇 개 안 돼요. 성수가 성철 형 집에 갔을 때 이 집에 여자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잖아요. 처음에는 샴푸와 린스만 있었는데 두툼한 여성용 패드를 사오라고 해서 더 친절하게 가는 장치를 말했죠. 또 성수가 결벽증이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손을 씻을 때 브러시를 가져와 달라고 했고, 여러 각도로 닦아본 정도에요. 허정 감독은 이번에 예산 때문이나 뭐 그런 것 때문에 답답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에서 숨겨진 발톱이 더 나올 거예요. 기대하셔도 돼요.”
![]() |
지난해 화제 드라마 ‘추적자’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손현주는 “‘추적자’는 일단 가슴이 정말 아팠다. ‘이래서 우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구나’ 생각했다”며 “옆에 사람들이 다 배신하잖나. 절대 고독이 느껴지더라.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헤어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보통 작품이 끝나고 안 쉬거든요. 일주일 내지 보름 정도 쉬는데 ‘추적자’ 끝나고는 두 달 정도 쉬었어요. 시나리오는 들어오는데 비슷한 대본이더라고요. 또 하기는 싫었죠. 그때 ‘숨바꼭질’을 먼저 봤고,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나중에 봤어요. 영화 ‘아저씨’의 무술 감독과 훈련을 몇 개월 정도 하다보니 그제서야 ‘추적자’의 백홍석을 옆으로 잠깐 놔둘 수 있겠더라고요.”
작품이 끝나고 쉬지 않는다는 그는 “산을 좋아하는데 산에 갔다오면 좋아지더라”고 만족해했다.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서 골프를 못쳤고, 지금은 바빠서 골프를 못친단다. “산에서 힐링하고 오면 됐죠 뭐. 아이들이 중학교 3학년생이고, 초등학생 4학년생이니 학원도 가야하고 들어갈 게 많아요. 쉴 수 없죠. 하하하.”
영화는 공포심을 유발하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황금의 제국’ 촬영 끝내고 집에 갔는데 큰 아이가 화를 확 내더라고요. ‘왜 이런 얘기였는데 말 안 해줬느냐? 친구들하고 봤는데 엄청 무서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족영화 아냐?’라고 했더니 ‘도대체 뭘보고 가족영화야?’라고 하던데요? 하하하. 아내는 아직 못봤는데 ‘오락영화야!’라고 얘기해줬죠.”
20여 년이 넘게 연기 생활을 한 그의 과거도 궁금했다. 지금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데 과거에는 연기 못한다고 혼나기도 했는지 물었다.
“그럼요. ‘손현주,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직접 대 놓고 비속어까지 써 가면서 그러더라고요. 그때 ‘당신이 내가 안 된다고 해도 나는 내가 갈 길을 가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래도 고마운 건 그런 사람들이 굳은살을 만들어 줬다는 거예요. 나는 그 고마움을 알아요.”
그러면서 극단 출신 손현주는 후배들을 향한 애정도 드러냈다. “휴대전화에 연극배우 목록이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에 추천하려고요. 진주같은 배우들은 쓰임을 받아야죠. 그래야 시청자도 기분 좋고, 드라마나 영화의 질이 좋아질 거예요. 우리 소속사에는 싫어하겠죠. 하지만 오디션이라도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달라는 정도예요. 난 그런 도움을 못 받았어요. 다행히 전 공채 탤런트(1991년 KBS)라 드라마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런 루트를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요. 선배들이 그런 일을 해줄 때라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손현주는 연기생활을 하면서 위기라고 느낀 순간은 없었다고 했다. 촬영을 하다 왼쪽 무릎뼈와 턱이 으스러졌을 때, 어떻게 하면 빨리 재활을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 한 정도다. “아무리 역할이 없어도, 인기가 높지 않아도 위기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산에 들어갔다 오면 됐죠. 하하하. 긍정적이라고요? 전 그렇게 안 하면 앞으로 못 갈 것 같아요. 연극할 때의 힘이에요. 당연한 거죠. 굳은 살이 생겼거든요. 오히려 힘들다고 느꼈던 건 무대와 드라마의 매커니즘 차이였죠. 발성의 크고 작음 같은 것들이요.”(웃음)
![]()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호호호비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