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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완벽하게 흥얼거릴 수 있는, 그야말로 불후의 명곡 아닌가. 이 주옥 같은 곡들의 주인공은 단 한 사람, 가수 신승훈(45)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1991)으로 1992년 골든디스크 대상을 거머쥔 신승훈은 그 해 여름,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데뷔한 지 만 2년 만에 당시 최대 규모 공연장을 꽉 채운 당시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 약관을 갓 넘긴 이 청년은 그렇게 목소리와 기타 하나로 당대를 풍미했다.
이는 단지 신승훈에 대한 오래 전 기억 혹은 ‘역사’가 아니었다. 20년도 더 지난 2013년 11월 9일, 그는 같은 장소에 똑같이 올랐다.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전석 매진을 기록한 ‘2013 THE 신승훈 SHOW-GREAT WAVE’는 1만 여 객석이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 채워지며 대성황을 이뤘다. 20년이 지나도 변함 없는 만인의 ‘오빠’, 신승훈의 힘이었다.
이날 신승훈은 ‘오늘같이 이런 창 밖이 좋아’, ‘그대’,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가을빛 추억’ 등 시간을 넘나드는 주옥 같은 선곡으로 공연을 서서히 물들여갔다. ‘Hey Girl(소녀에게)’에 이어 게스트 라디(Ra.D)와 함께 ‘I’m in love’, ‘그랬으면 좋겠어’를 부른 신승훈은 버벌진트와 함께 ‘Love Witch’를 부르며 분위기를 달궜으며, 뒤이어 ‘엄마야’, ‘날 울리지마’, ‘내 방식대로의 사랑’, ‘당신은 사파이어처럼’ 등으로 다채로운 분위기의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신승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통기타 레퍼토리 또한 드넓은 체조경기장에서 빛을 발했다. 신승훈은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OST로 큰 사랑을 받은 ‘너에겐 들리지 않는 그 말’을 최초로 팬들 앞에 공개하는가 하면, ‘오랜 이별 뒤에’로 떼창 완창에 성공, 애잔하면서도 흐뭇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뒤이어 “눈을 감고 들어보라”는 팁과 함께 선보인 ‘나비효과’와 ‘Sorry’에서는 깊은 울림과 함께 지난 6년간의 음악적 실험과 여정을 고스란히 짐작하게 했다. 기존 발라드 히트곡과 확연히 다른 느낌의 ‘나비효과’는 소리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전달했으며, 그의 건재함을 입증한 ‘Sorry’는 라이브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뜨거운 열기 속 숨 돌릴 틈도 없이 분위기는 급 반전됐다. 발라드 황제 승훈神의 재림이었다. 다시 한 번 신승훈 發 타임머신이 출발했다. 압권은 ‘가잖아’, ‘이런 나를’, ‘보이지 않는 사랑’에 이어 ‘그 후로 오랫동안’까지 이어진 발라드 4콤보. 신승훈은 처절-애절-애틋-애잔 발라드 4단계를 혼신의 열창으로 해냈다.
체조경기장 가득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1만 여 팬들은 모두 숨죽였다. 처절하게 토해내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청아하고 애절했다. 곳곳에서 소리 없는 탄식이 쏟아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이별의 감성에 깊이 빠져들어 노래를 마친 그의 코끝과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적잖은 이들의 눈물을 빼놓은 ‘그 후로 오랫동안’으로 1만 여 관객과 다시 한 번 떼창으로 소통한 신승훈은 먹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발라드를 부르고 나니 역시 난 ‘태생이 발라더’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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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가수로 시작해서 뮤지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티스트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진정한 레전드가 아닐까 싶다”며 “‘너는 계속 음악을 해야 해’라고 박수쳐 주는 여러분들이 있기에 나는 계속 노래 부를 수 있다”고 변함없는 사랑과 응원을 보여주는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신승훈은 “한 때 음악에 패기가 없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지켜봐주시는 만큼 이젠 더 열심히 하겠다”며 “언제까지나 음악바보, 신승훈으로 남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굳은 다짐을 숨죽여 듣던 팬들은 일제히 박수와 함성을 보내며 ‘음악바보’ 신승훈에게 두둑히 힘을 실었다. 최소 향후 ‘23년치’ 에너지를.
‘레전드 오브 레던드’. 전설 중의 전설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 신승훈은 또 하나의 명곡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을 어느 때보다 힘주어 열창하며 본 공연을 끝냈다. 앵콜곡으로는 새 앨범 ‘Great Wave(그레이트 웨이브)’에 수록된 ‘My melody’를 선보였다.
노래 속엔 온통 ‘사랑한다’는 가사지만 실제 자신의 팬들에게는 데뷔 10년 만에야 비로소 사랑한다 말했다는, 표현이 서툰 이 남자가 만든 팬송 ‘My melody’가 울려퍼졌다. 팬들과 눈을 맞추며 어느 때보다 고마움 한가득인 표정으로 노래하는 신승훈을 향해, 1만 여 팬들 역시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손을 흔들며 변함 없는 사랑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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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 높은 음향은 공연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60인조 오케스트라와 대규모 합창단, 밴드에 신승훈 공연 사상 최초의 게스트 또한 적재적소에 잘 어우러졌다. 장장 두 시간 반 넘는 공연이었지만 단 한 순간도 아쉬움 없이 채워진 위대한 무대였다.
하지만 그에 앞서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것은 바로 신승훈 그 자신이었다. 신승훈 음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대 최고의 공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은 물론, 스스로 지난 6년간의 음악 실험의 마지막 결과물을 ‘그레이트 웨이브’라고 자신있게 표현한 이유를 분명히 각인시켰다.
어떤 연출도 필요 없이 통기타 하나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국보급 보이스의 소유자 신승훈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욕심쟁이’면서도 발라드 장르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1인자였다. 더욱이 수많은 명곡을 직접 쓴 희대의 싱어송라이터이기까지 하니, 20년이 지나도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이쯤 되면 ‘왜 신승훈인가’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삼스럽지만 신승훈이라는 뮤지션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게다가 자신의 음악 인생은 이제 겨우 반도 오지 않았다며 새로운 23년을 설계하는, 전설을 꿈꾸는 그와 함께라니 말이다.
한편 ‘더 신승훈 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신승훈은 오는 12월 25, 26일 일본 도쿄 나가노 선플라자홀에서 ‘더 신승훈 재팬 라이브 2013 그레이트 웨이브’ 콘서트를 열고 2년 만에 일본 팬들을 만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도로시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