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강태명 인턴기자]
목욕탕은 평등한 곳이다. 지위고하,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발가벗은 치욕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장소. 목욕탕을 찾는 이들은 일신(一身)을 일신(一新)하고 일신(日新)을 꿈꾸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사연은 다른 법. 누군가에게 목욕탕이 새 출발의 매개소라면, 누군가에겐 안 좋은 기억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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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만용의 아버지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자체로 정(情)이었다. 힘듦을 말할 수 없는 사람. 가족을 위해 모든 짐을 지는 남자. 자식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피붙이. 커보이기만 하던 아버지란 존재, 내 머리가 굵어질수록 그의 어깨는 움츠러들지 않았는지. “아버지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아들.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만큼 하기가 힘듦을 깨닫게 된다.
만용을 돕는 친구들의 사연도 절절하다. 부모없이 자란 다방종업원 리지,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양아치조폭 닥스, 소심한 성격 때문에 피해만 보던 이발사 명달. 우여곡절 끝에 의기투합하게 된 이들은 믿음을 쌓아간다. 서로 의지하며 각자 마음에 담긴 소중한 것의 가치를 깨닫는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라는 시처럼 목욕탕이란 삶의 밑바닥에서 인물들의 새 삶이 돋아난다.
작은 목욕탕 안 로비에서 만용은 말한다. “목욕탕은 깨끗해지는 곳이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벗겨낸 때들이 모이는 가장 더러운 곳이기도 해.” 목욕탕의 때처럼 보잘것 없었던 세 사람. 결핍된 인생을 살아온 세 사람이 땀흘리며 가꾼 목욕탕은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깃든 장소가 된다. 이들의 만남은 곧, 목욕탕이란 그릇에 담긴 맛있는 ‘우정탕’이다.
생생한 캐릭터들은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밑거름이다. 생동감 있는 인물들이 중요한 이유는 ‘꽃미남탕’이 기존의 정통한 구성으로 펼쳐지기 때문. 주인공이 방황과 위기를 겪는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재기하지만 서로 갈등을 빚는다. 극적으로 갈등이 해소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익숙하고 진부하지만 가장 확실한 구조다. 확실함에 캐릭터의 개성을 더하니 재미가 배가된다.
연극을 본 후 목욕탕에 가면 이렇게 되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혹은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와야겠어.” “친구랑 몸 풀러 한번 더 와야겠어.” 어느 말이라도 좋다. 소중한 사람 한 명쯤 떠올릴 수 있다면
연극 ‘꽃미남탕’은 대학로 달빛극장에서 오는 9월4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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