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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연습생, 9년 미국생활이요? 데뷔 전부터 이런 꼬리표가 붙은 게 편하지만은 않죠. 이제 신인가수로서 음악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가수 지소울(본명 김지현·28)은 19일 첫 앨범 ‘커밍홈(Coming Home)’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한국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지난 2001년 SBS ‘영재육성 프로젝트’에서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박진영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를 향한 박진영 대표의 격찬이 화제가 됐다.
지소울은 “어릴 때여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나만의 색을 가지라고 조언했던 것만 기억난다”며 “박진영 대표는 알려졌듯 앞에서 칭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번에도 나를 믿고 맡겨줬고, 혼자 잘해왔으니까 지원군 역할만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사를 보고 ‘15년’이란 걸 알았어요. 주위에서 고생 많았다고 격려도 해주고요. 하지만 저보다 더 고생한 사람이 훨씬 많겠죠. 아티스트의 길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잖아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년. 오히려 빨리 데뷔하지 않아 다행이에요. 아티스트로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요. 지금이 때라고 느껴 데뷔 결심을 굳혔을 뿐이죠.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저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15년’이 강조돼 특별하지만 ‘28세’란 숫자는 보통 사회초년생 남성의 나이와 비슷하다. 지소울은 ‘가수’라는 꿈을 위해 15년간 미국에서 자신을 담금질한 셈이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 곡 ‘유(You)’를 비롯해 ‘커밍 홈(Coming Home)’ ‘퍼스트 러브(1st Love)’ ‘변명(Excuses)’ 등 6곡이 담겨 있다. 장르도 다양하다. 딥하우스(Deep House), 팝, 알앤비, 얼터네티브록, 블루스 등이다. 모두 그의 작사·작곡이다.
이번에 실리지 못한 나머지 곡들은 이후 정규 앨범으로 나올 예정이다. 지소울은 “앞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려고 노력 중”이라며 “내가 음악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인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앨범 타이틀처럼 “집에 돌아온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신의 음악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쏟아졌다. 얼른 대중에 보여주고 싶어 어찌 참았나 싶다.
“집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 최종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예요. 15년간 저를 바라본 사람들을 향해 답을 주는 뜻이죠. 지금 난 여기까지 왔고,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가는 중이라고 설명하는 곡이랄까요. 아무튼 싱어송라이터로서 작사·작곡 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홀로 지낸 세월이 길어서일까. 그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꾸 강조했다. 가족들의 영향도 컸다. 미뤄지는 데뷔에도 재촉하지 않았다. “굶어죽지만 말라”는 것이 부모님의 조언이었다.
“열심히 하라고, 몸만 건강하고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라고. 그게 다예요. 그래서 오래도록 부담 없이 내 일을 해왔던 것 같아요. 물론 데뷔한다고 말하니까 가족들 모두 좋아했죠. 어릴 때부터 가족들 영향을 받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자’라는 생각이 강해요. 쉽지 않지만 자유로워지려고 해요. 그런 사람, 그런 아티스트가 되는 게 꿈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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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울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 JYP 소속 가수 중 미국에서 활동 중인 ‘누군가’가 있다고 알려지며 몇 년째 그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왔다.
다만 도대체 미국에서 무얼 하는지 궁금증은 증폭됐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정말 소울(Soul)만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박진영의 과장된 표현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흑인 음악이요? 저는 제 것을 할 뿐이에요.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있죠. 마이클 잭슨이나 샤데이(Sade)가 대표적이에요. 하지만 ‘소울’이란 장르는 전 세계적이니까요. 각 나라마다의 소울은 제각각이잖아요. 흑인처럼 해야 된다는 강박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한 가지만 접하면 그것에 관한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건방진 정신병 같은 증상이요. 제게는 마이클 잭슨이 그런 존재였어요.”
지소울은 “마이클 잭슨은 연습을 미친 듯이 한 인물”이라고 존경했다. 마이클 잭슨은 천재임에도 그랬다. 노력 없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소울은 “나도 미국에서 엄청 노력했다. 뉴욕 지하철에서 매일 노래하면서 즐기면서 하는 음악을 배웠다. 페이스 조절하는 법, 관객들 가까이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요령 등 데뷔 후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지소울에 관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있다. 알 켈리(R.Kelly)다. 지소울은 2001년 ‘영재육성 프로젝트’에서 알 켈리의 ‘아이 빌리브 아이 캔 플라이(I believe I can fly)’를 불러 재능을 인정받았다. 미국에서도 알 켈리와 함께 작업할 뻔 했다. 그러나 데뷔가 계속 미뤄지며 이마저도 흰소리로 치부됐다.
지소울은 “알 켈리와 음반작업을 함께 했던 건 사실”이라며 “그에게서 칭찬도 많이 들었다. 기쁜 순간이었지만 끝까지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데뷔가 지연된 데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비즈니스 영역이다. 나는 회사 쪽 일은 잘 모른다”고 괘념치 않았다.
이처럼 알져지진 않았지만 수많은 음악작업,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해온 지소울이다. 모두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주변 여건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실 더 일찍 데뷔할 수도 있었다. 세계금융위기가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박진영은 “한국과 달리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미국의 음반사들은 모두 긴축 재정과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위험부담이 높은 프로젝트들을 백지화 시켰다”고 지소울의 데뷔가 무산된 이유를 밝혔다.
미국 사업자 입장에서 동양인 가수를 위한 지출을 꺼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JYP는 미국에서 철수했다. 그럼에도 지소울은 혼자 미국에 남았다. 배울 것이 많다는 판단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버스킹을 시작했죠. 용돈벌이 차원이기도 했고요. 풍족하진 않았지만 밥값은 충분했어요. 현직 가수들을 따라다니며 백그라운드 보컬도 많이 했었죠. 2년 전쯤엔 머라이어 캐리 자선행사에서 코러스도 맡았어요. 전 키가 작아서 머라이어 캐리 바로 옆에 설 수 있었는데, 천사 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소름 끼칠 정도였어요. 내한 공연 땐 왜 그렇게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그는 유튜브에서 유명인사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한 곡들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지소울은 “앨범 준비 전까지 어떻게든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 유튜브를 활용했다”며 “미국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던 ‘생 날음악’이 힌트가 된 게 이번 데뷔앨범이다. 아이디어가 엄청 많으니 이제부터 하나씩 해보려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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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어릴 때부터 했어요. 이번 앨범의 재킷도 제가 디자인했죠. 문구도 자필이에요. 노래만 하는 가수가 아닌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이죠. 롤모델은 바스키아(Basquiat)라는 미술가예요. 자유로운 예술관이 부러워요. 짧고 굵게, 제가 태어난 해에 저세상으로 떠났는데 그 분처럼 살다 가고 싶어요. 물론 더 길게요. 심리학은 어릴 때부터 ‘나는 정신이 이상하다’고 느껴서 배웠어요. 나는 어떤 존재일까요? 한번 파헤쳐보고 싶은 마음이었죠. 또 사람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프로가수로서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며 자신에게만 신경 쓰던 시절은 과거가 된다. 그래도 음악적 고집은 포기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측면은 회사를 이해를 하고 따라야 하겠죠. 다만 음악활동에 있어서 아티스트로서는 나의 주관은 포기할 수 없어요. ‘잘 팔리는 음악’ ‘유행을 따르는 음악’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나의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무언가에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아요. 무대에 서는 것이 좋기 때문에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이런 고집과 일맥상통한 뒷이야기가 하나 있다. 2011년 방송된 KBS 드라마 ‘드림하이’ 캐스팅 건이다. 데뷔를 위해 드라마부터 시작하자는 회사 측의 배려였을 수도 있다. 지소울은 이 제안을 뿌리쳤다.
그는 “거절이라기엔 애매하다. 그때 하고 싶은 일은 분명 아니었다.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는 게 더 급하다고 생각했다”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드라마고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다. 나는 돈을 좇는 건 아니었기에 괜찮았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이미 세웠다.
“제가 미국에서 망해서 돌아왔다고요? 저는 이제 신인가수인걸요. 물론 미국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있어요. 현지 팀들과 논의 후 구체화 할 예정이에요. 때가 되면 모두 공개할 것들이죠. 일본어와 스페인어도 공부하고 있어요. 유럽이든 어디든 기회가 된다면 다녀보고 싶어요. 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에 계속 집중할 거예요. 재밌게 음악을 하는 게 소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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