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로맨틱한 도시의 대명사,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만든 두 영화가 있다. ‘웰컴, 삼바’와 ‘파리 폴리’에선 같은 듯 다른 파리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파리를 떠올리면 영화 ‘사랑해, 파리’(2006),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 ‘미드나잇 인 파리’(2011) 등에서 만난 로맨틱한 풍경이 그려진다. 에펠탑이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옛 사랑과 우연히 재회한다거나, 바게트 빵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 하나는, 파리 역시 도시라는 점이다. 도시는 결코 로맨틱한 곳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깡통과 같은 곳이 도시니까. 아무리 ‘로맨틱’의 대명사라해도 사람 사는 곳에는 슬픔과 외로움, 상처가 공존하는 법이다. ‘웰컴, 삼바’와 ‘파리 폴리’가 파리의 이면을 공개한다.
![]() |
‘웰컴, 삼바’는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인 삼바(오마 사이 분)가 시민권을 얻지 못해 프랑스에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고, 급하게 이민자 지원센터를 찾는다. 그곳에서 번아웃 증후군(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인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에 시달려 휴직을 하고 봉사활동 중인 앨리스(샤를로뜨 갱스부르 분)를 만난다. 앨리스는 법률적으로 삼바를 도울 수 없었고, 삼바는 경찰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다.
삼바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불법체류자의 삶을 대변한다. 그는 신분증이 없는 탓에 일용직을 전전하고, 그마저도 단속에 걸리면 추방당하게 된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게 파리란 일거리 없는 도시, 동시에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도시다. 앨리스라고 다르지 않다. 겉보기엔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지만, 건강은 병원을 다녀야 할 수준으로 상한 커리어 우먼이다. 그는 지나친 업무 탓에 폭발하는 화를 주체 못하고 동료에 폭력을 휘두른 후 휴직했다.
윤택한 삶을 살면서, 여유를 만끽할 것 같던 파리지앵의 이미지는 삼바와 앨리스의 삶을 엿보는 순간 무너진다. 때문일까, ‘웰컴, 삼바’ 속에는 파리의 관광 명소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 흔한 노천카페에서 데이트하는 장면도 없다. 오히려 뒷골목, 허름한 식당, 작은 집의 내부 등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 점이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파리지앵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파리 폴리’의 파리도 절망적이긴 마찬가지다. 노르망디의 전원에서 남편 자비에(장 피에르 다루생 분)과 목장을 운영하는 브리짓(이자벨 위페르 분)은 우연히 연하남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를 잊지 못해 파리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브리짓이 파리에서 다시 만난 연하남은 이전에 만난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남자가 아니다. 심심하면 마리화나를 피고, 생계유지로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린 아이일 뿐이다. 실망한 브리짓에게는 또 다른 인연이 찾아왔다. 한 중년 남자는 브리짓에게 산책을 함께하자 권하며,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비에가 브리짓의 거짓말을 눈치 채고 파리로 넘어온 것이다. 그는 브리짓과 중년 남자의 만남을 눈으로 좇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비에의 눈에 비친 파리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자비에는 홀로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미술관에 들러 브리짓이 생각나는 그림을 구경하기도 하고, 바닥에 앉아 조각상을 데생하는 미술학도를 잠시 바라보기도 하며, 아기자기한 물건이 가득한 진열장을 살피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코 등장하지 않는 장소는 파리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푸른 잔디, 해질녘 노천카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다.
그렇다면 브리짓의 파리의 여행은 마냥 즐거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리짓은 남편의 품으로 돌아간다. 중년 남자와의 하룻밤은 브리짓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됐지만, 묵묵한 남편과의 일상이 그리워진 시간이기도 했다. 두 사람에게 파리란 노르망디의 삶을 공고하게 만든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했다.
‘웰컴, 삼바’와 ‘파리 폴리’의 두 커플은 파리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다만 파리이기 때문에 사랑을 공고히 할 수 있고, 파리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폴 인 러브’(Fall in love)식 파리는 아닐지 몰라도, 파리가 사랑하지 않고 못 배기는 도시인 건 분명하다.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