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영화 ‘화장’의 추은주는 ‘삶’, 그 자체를 표현하는 인물이다. 어떤 대사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생생하고 아름다운 몸만으로 ‘활기’(活氣)를 뿜어낸다. 김규리는 작품 속에 가득 담긴 추은주의 농밀한 매력에 대해 “아름답지 않을까 걱정했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영화 속 추은주는 소설 속 추은주와 너무 달라요. 영화 속 추은주는 화장품 회사에서 화장품을 홍보하는 정말 젊고 예쁜 역할이에요. 아름답게 표현 돼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할까봐 걱정 많이 했어요. 스태프들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감독님도 스태프들도 저를 예쁘게 잡아주는 걸 목적으로 삼고 촬영에 임하셨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고, 참 감사하고 죄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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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옥영화 기자 |
그의 겸손한 말과 달리, 임권택 감독은 김규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추은주의 역할로 캐스팅했다. 임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특별무대에 오른 김규리의 춤사위를 보고서 추은주가 지닌 삶의 에너지와 흡사하다고 판단했다. 후에 김규리에게 ‘화장’에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권했고, 김규리는 제안을 받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케이’했다. 그는 화장을 두고서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임권택 감독님의 오랜 팬 중 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화장’을 찍으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어요. 아무 생각 않고 있던 와중 저에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시나리오를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 읽어 보지도 않고 그냥 하겠다고 했어요. 하하. 임 감독님은 이유 없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분이 아니에요. 그러니 당연히 해야 되는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잘 못해도 예쁘게 그려주시겠지 싶었어요.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현장에 갔다가 오히려 임 감독님의 현장을 대하는 자세, 안성기 선배님의 연기적인 깊이, 자상함 등을 보고서 정말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그 자극으로 저를 뒤돌아보게 됐죠. 가볍게 들어가서 무겁게 나온 촬영이었어요. 또 저 스스로에게 오랜만에 질문을 던지게 됐던 작품이에요. 임 감독님께선 제가 캐릭터를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맡겨주셨어요. 그게 더 어려웠지만, 고민을 거듭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좋았어요”
김규리는 안성기와 김호정, 임 감독을 언급하며 연신 미소 지었다. 임 감독에 대해선 “삶의 지혜를 담는 감독”이라 말했고, 김호정에 대해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배우”라는 말을 남겼다. 특히 안성기에 대해선 극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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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옥영화 기자 |
“안성기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서 충격 받았어요. 어떻게 연기를 할까 상상하고서 현장을 찾았는데, 상상과 전혀 달랐어요. 마치 안개를 보는 것 같았어요. 안개가 수면 위로 깔리는 데, 물에 닿아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공중에 떠서 흩어지는 것도 아닌. 깊이 있는 안개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게 진짜 연륜인가 싶더라고요. 극중에 오상무가 추은주를 응시하는 장면이 있어요. 롱테이크로 촬영했기 때문에 긴 시간 카메라가 안성기 선배님을 클로즈업 했어요. 그런데도 숨은 쉬는 건가 싶을 만큼 오랜 시간 한 곳을 응시하시더라고요. 그 과감함이 충격적이면서도 멋있었어요”
김규리는 “경험이 많은 선배 배우들과 연기한 게 부담스럽지는 않냐”는 질문에 “전혀요”라며 단박에 답했다. 그는 “선배님들 옆에서 연기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영광이었어요. 오히려 마음처럼 잘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웠죠”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안성기, 김호정, 임 감독이 온 힘을 다해 촬영에 임하는 것을 보고서 줄곧 죄송스러웠다고 말했다. 특히 김호정의 연기를 보고서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김호정 선배님은 실제로 투병하셨어요. 몸이 아픈 것을 정신적으로 중무장해 건강해진 거예요. 그런 선배님께서 죽음으로 걸어가는 아내 역을 맡았어요.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안 드셨어요. 그 분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멋진 화장실신이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언젠가 ‘김호정과 김규리가 역할을 바꿔 연기하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어요. 김호정 선배님이 한 연기를 평가할 수도 없고, 가늠할 수도 없어요. 정말 대단한 배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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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옥영화 기자 |
김규리는 자신을 안성기, 김호정 덕에 “묻어갔다”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겸손의 표현이다. 그 역시 임 감독이 극 속에 담아내려 했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거듭했다.
“임 감독님의 작품 속에는 항상 이야기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어요. 언제나 철학을 지니고 계시죠. ‘화장’으로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는 ‘중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한 남자’이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 ‘화장’이 매력 있는 이유는 임 감독님께서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글이 좋을수록 영상화 작업을 했을 때 재미가 떨어지죠. 그런데 확실히 좋은 이야기는 구성이 좋기 때문에 영상으로 변하더라도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김훈 작가의 ‘화장’과 임 감독님의 ‘화장’은 각자의 매력이 있어요. 이야기 전체적인 흐름은 같지만 가진 소스나 말하고자하는 바가 다르니까요”
“특히 영화 ‘화장’에서는 죽어가는 몸과 생기발랄한 몸이 대조를 이뤄야 하고 죽음과 삶, 젊음이 두드러지게 상반된 모습을 보여야 했어요. 그 중에 제가 젊음의 상징으로 등장하죠. 소설 ‘화장’에는 몸에 대한 집착이 더 큰 것으로 묘사되지만, 영화 ‘화장’은 달라요. 몸에 대한 집착을 넘어 감성적인 시선으로 변화했죠. 그래서 옷을 입을 때도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몸이 드러나는 의상을 선택했어요. 추은주의 육감적인 면을 많이 표현하려 했죠”
김규리는 인터뷰 내내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자신은 이번 작품에서 무임승차한 것과 다름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나 김규리가 아니었다면, 어느 누가 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이토록 강렬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을까. 삶에 지친 오상무에게 삶의 의욕을 돋아줄 최은주는 김규리였기에 숨막히게 환상적인 모습일 수 있었다.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