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영화 ‘춘희막이’는 기구한 인연으로 시작한 본처 막이 할머니와 후처 춘희 할머니의 일상을 담아냈다. ‘톰과 제리’보다 더 불편하고 어색한 사이인 본처와 후처. 시작은 비극적이었으나 남편이 죽은 지금은 이 세상 둘도 없는 단짝이자 친구로 인생을 살고 있다.
본처와 후처인 두 할머니의 관계는 보는 관객까지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높이고 있다. 두 할머니의 인생을 통해 지나간 역사를 떠올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의 이해, 용서, 우정 등 매우 묵직한 교훈을 얻게 된다.
↑ 사진=홀리가든 |
‘춘희막이’를 연출한 박혁지 감독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본처와 후처의 불편한 관계를 통해 생각보다 더 엄청난 메시지, 여운, 교훈을 관객에게 선물했다. 수상이 이를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극장 개봉에 앞서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JIFF)에 공식 초청된 것도 모자라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수상했다.
“하반기에 극장 개봉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이 가운데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으로 받게 될 지원은 내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들이다. 9편의 극영화가 아닌 1편의 다큐멘터리 작품에 그 기회를 준 CGV아트하우스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기쁠 따름이다. (웃음)”
“사실 본처와 후처라는 아이템을 찾다가 두 분을 만난 건 아니다. 지난 2009년도에 모 방송사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2부작을 만든 적이 있었다. 당시 2주 정도 촬영을 진행했었는데, 두 분의 캐릭터나 스토리, 상황 등이 1회성 방송에서 소비되는 게 아쉬웠다. 특히 춘희 할머니는 촬영 내내 뭔가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막이 할머니나 가족들, 이웃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춘희 할머니는 ‘태평이’ ‘바보’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에 담겨지는 춘희 할머니의 모습은 다양했고, 아이같이 모자라는 부분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말투,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춘희막이’ 연출의 1차적 동기는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두 여자가 왜 남편이 죽은 상황에서 굳이 같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을까?’였다”
다큐멘터리와 실화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힘도 크지만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들의 일상을 소소하게 담은 작품들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까지도 인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춘희막이’ 역시 이 바통을 이어받을 준비를 마친 셈이다.
“우리말 중 ‘선생님’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는 나보다 먼저 살아온 분들을 부를 때 사용되기도 한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이런 선생님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생의 혜안을 갖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혜안에는 유머도 존재한다. (춘희, 막이 할머니 역시 그랬다.) 이야기의 힘도 크다고 생각한다. 실재하는 진짜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어필되고 감동이 찐하게 전해진다. 다큐멘터리가 실재하는 현상이나 상황만을 그냥 전달하는 날 것의 영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더라. 하지만 이 전제에는 또 하나의 단서가 분명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야기이다.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은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들이다.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위에 있지만 알지 못했던 스토리가 다큐멘터리 필름 메이커들의 시선과 생각으로 걸러져 관객과 만난다는 게 핵심이다.”
실화의 힘이 크더라도 이를 적절하게 담아낸 감독의 연출력과 ‘촬영 중이예요’가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편한 분위기를 유도해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게 다큐멘터리의 핵심 같다. 이를 위해선 춘희, 막이 할머니와의 친분도 필요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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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홀리가든 |
“시골 독거노인들이 살고 있는 촬영 현장은 늘 일상의 반복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질 수도 벌어질 리도 없는 그런 곳이다. 다만 내가 믿고 있는 찍고 싶은 순간이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애증의 관계로 40년 넘게 50년 가까이 살아온 춘희와 막이 두 분은 델마와 루이스의 여자들의 우정으로 표현하긴 모호한, 그렇다고 사랑이라는 관계로 명명하기에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 찰나의 순간을 찍고 싶었고, 2년이라는 촬영시간 중에 상당 분량이 녹화됐다. 이를 위해 난 그 날 그 날 두 할머니의 일정을 파악하고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직관적인 판단을 믿으면서 촬영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춘희, 막이 두 할머니의 일정을 파악하고 카메라에 세세하게 담아내려 노력한 박혁지 감독 덕분에 관객들은 일말의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극 중간 중간 카메라(감독)에게 건네는 듯한 할머니의 대사가 나와 친숙하다.
“매순간 진심으로 두 분과 함께 하려했다. 내 다큐멘터리의 피사체가 아닌, 두 여자의 삶 속에 잠시 내 자리를 허락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더 성실하려고 노력했다. 주위의 이웃 분들께도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대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 역할은 그 이야기를 발견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들과 함께 하는 것뿐이다. 운 좋게도 두 할머님들 역시 나를 많이 좋아해주셨다. (웃음)”
“춘희와 막이 할머니의 특별한 순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둘 사이는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유니크하면서도 특별한 관계이고 이를 부각키시고 싶었다. 2009년부터 막이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내년에는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말을 지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웃음) 그런데 작년에 처음으로 농사를 짓지 않아 놀랐다. 그만큼 힘이 든다는 이야기다. 올해 한국 나이로 90세이다. 고령에 워낙 식사를 잘 못하시는 편이라 힘이 드신 것 같다. 건강이 많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잘 지내시는 편이다. 춘희 할머니 역시 농사일이 힘들긴 하지만 소일거리로 나쁘지 않았는데 요새는 좀 무료하신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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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그러해서 엮여버린 두 여자의 일생은 대단히 일방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에 순응하고 결과적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두 여자는 오롯이 지켜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대답을 춘희, 막이 할머니는 둘이 함께한 시간으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안약을 넣어주고 상대방을 기다리고, 남겨질 누군가를 걱정하고. 과연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 한 것 같다. 나 역시도 이렇게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쉽고 평범하기까지 한 진리를 춘희, 막이 할머니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