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최근 국내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영화 ‘극비수사’는 1978년도 서울과 부산의 거리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곽경택 감독은 거리 속 간판부터 행인들의 의상을 비롯해 사소한 소품들까지 디테일을 살려 그 당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곽 감독의 연출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게 도와 준 사람은 바로 전인한 미술감독이다. 그는 지난 2006년 미술, 소품, 의상, 분장 등의 인력을 모아 종합미술서비스 회사 세발자전거필름을 설립했다. MBC미술센터에서 일하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안성기 주연의 영화 ‘영원한 제국’의 미술세트를 담당하게 됐고, 그 매력에 끌려 지금까지 영화계에 몸을 담고 있다.
11년의 노하우를 통해 실현된 ‘극비수사’ 속 부산과 서울의 거리는 그야 말로 ‘리얼’했다. 곽 감독은 실제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이 있는 제작진을 구성했고, 순제작비 20% 가량을 미술과 소품제작에 쓸 정도로 공을 들였다.
Q. 영화 속 유괴사건을 당시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제작진을 꾸리길 원했다고.
“당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죠. 감독님이 실제로 당시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원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감독님도 많은 것을 알고 계시고, 배우들도 베테랑이고, 제작진도 그렇고요.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웃음) 각자가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확실하니까요. 그런 것에서 오는 어려움이랄까요? 그래도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내는데, 확실히 편하긴 하더라고요.”
Q, 시나리오를 보고, 혹은 영화를 찍고 나서 달라진 생각이 있나?
A. “사실 그 당시에는 어렸으니까 납치됐다가 살아왔다는 것만 알았어요. 자세한 건 이번에 보면서 알았죠. 실화다 보니까 김중산 도사와 공길용 형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더욱이 픽션을 넣을 수가 없었죠. 문제는 옛것이 남아있는 곳이 별로 없었어요. 초등학교 앞에 세트도 다 만들었는데, 현재 있는 집들의 대문을 다 가려야 하잖아요. 미술팀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얼음도 가져다 드리면서 양해를 구했어요. 하하. 그래도 촬영하면서 정말 좋았던 건, 타이머신을 탄 기분이었다는 거예요. 어릴 때의 기분을 많이 느꼈어요.”
Q. 곽 감독의 스타일이 있을 텐데. 이번 작품에서 조금 달라 보였던 점이 있다면?
A. “더 디테일해졌어요. 감독님이 뻔한 스토리는 안 하시잖아요. 거장답다고 해야 할까? 하하. 항상 소신 있게 정해지면 그것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스타일이에요. 정확한 데이터를 주셔서 훨씬 일하기 편하더라고요. 곽 감독님이 사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에요. 몰랐죠? 하하. 촬영장에서도 그렇고 매일 옷이 바뀔 정도였어요. 평소 세심한 성격처럼 영화를 준비할 때도 사소한 소품 하나에 꽂히면 어떻게든 그것을 영화에 녹여내죠. 이번 영화 같은 경우는 사라진 것들이 많아서 감독님이 원하는 걸 찾아내기가 참 힘들었어요.”
Q.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다지만 워낙 어린 시절이기도 했고. 영화 속에는 제법 구체적인 것들이 등장해야하니 고증 자료 수집에 특히 힘을 쏟아야 했을 것 같다.
“국회도서관이나 헌책방을 거의 뒤지다시피 했어요. 최대한 많은 자료를 발췌해야 하니까. 그것(위 사진)을 모아서 구체적인 그림으로 완성하고, 그 것들을 만드는 작업을 거쳤죠.”
Q. 준비 작업부터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쉴 틈이 없었겠다.
“맞아요. 미술팀은 거의 쉬지 못했어요. 하루 반나절 촬영을 한다면 미술팀은 준비하는 데에 3~4일, 많게는 일주일이 걸리거든요. 영화 속의 골목 같은 경우에도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데 다 만들어낸 거예요. 문제는 한 번 만들어 놓고 몇날며칠 촬영하면 좋은데 실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불편해 하시니까, 준비하고 철수하고 다시 촬영하고의 반복이었어요. 사실 그 곳이 재건축에 들어가서 대문도 하나 없었거든요. 옛날 골목이 참 다양하고 예뻤는데, 그걸 구현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시간이 많이 들어갔어요.”
Q. 거리도 거리지만 일반 가정집을 그린 부분에서 과거의 모습이 많이 드러난 것 같다.
A. “맞아요. 수돗가도 다 만들어서 재현했어요. 그때는 각 집마다 안테나가 있었잖아요. 그것도 만들고, 명태 말리는 그림도 생각했고, 마루도 만들고. 그 마루를 만들 때 옛날에 했던 대로 콩기름으로 기름칠도 했어요. 김중산의 집에 공이 정말 많이 들었어요. 최대한 리얼해보이게 하려고 애를 많이 먹었어요. 김중산 도사의 신당도 실제 김중산 선생님이 쓰시는 것들을 빌려와서 리얼하게 갔어요.”
Q. 수사본부를 ‘극장’에 차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굳이 극장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
A. “감독님이 만든 콘셉트였죠. 사실 그 곳도 대전에 있는 관공서였어요. 광주 극장에서 입구에 들어가는 것만 찍고, 대전의 한 관공서 1층을 지하처럼 만들어낸 거죠. 지금은 간판을 그리는 분이 없어요. 한 분이 유일하신데 직접 간판을 하나 그려주셨어요. 간판이야 말로 시대상을 제대로 보여주기에 적합한 곳이잖아요.”
Q. 원주, 대전, 울산, 부산, 광주, 전주, 서울 등 수많은 곳에서 촬영을 했다. 촬영지 선정도 함께 했나?
“항상 같이 하죠. 주로 조명감독이랑 장소 헌팅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감독이 비교를 해보고 재현될 수 있다고 하면 그 장소에 세팅이 되는 식이었어요. 제일 중요한 건 그 골목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공간감을 중요시했어요. 마지막에 계곡신이 있잖아요. 그 곳은 제가 직접 찾은 곳이에요.”
Q. 배경이 아닌 세세한 소품 하나에도 신경을 쓴 것 같다. 극장의 그림 간판부터, 거리의 자동차, 원색 계열의 옷차림, 공중전화 등.
A. “감독님도 사소한 소품 하나에 꽂히면 그걸 꼭 만들어내야 했어요. 경찰서신이 있는데 많은 종이들이 펼쳐져 있잖아요. 책상도 주문제작한 거예요. 40~50대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셨을 텐데 볼펜 똥을 닦는 장면. 책상의 사면이 고무재질로 둘러싸여있는데 옛날엔 그 곳에 볼펜 똥을 자주 닦았어요. 알잖아요. 그 모나X 볼펜. 하하. 그 정도로 디테일했죠.”
Q. 이번 작품에 참여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A. “장소가 워낙 많았다는 게 힘든 점이었죠. 15군데에 풀세팅을 했으니까요. 거의 90% 이상은 세팅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경찰서도 외부에 CCTV가 다 설치되어 있잖아요. 옛날에 CCTV가 어디 있었겠어요. 약국도 마찬가지고요. 철저하게 옛날식으로 찍어야했으니까. 문제는 한 번 촬영이 끝나면 또 철수해야하고. 그래도 다행인 게 감독님 스타일이 보충촬영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웃음) 워낙 정확하신 분이라서. 사실 그럴 수 있는 건 감독님이 스태프들과 대화를 자주 하기 때문이에요. 보통 키 스태프들과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내의 이야기까지 들으세요. 아마 돈(술값) 많이 들었을 걸요? 하하. 그래도 그런 감독님의 모습이 다른 제작진들로 하여금 응집력이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Q.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A. “음, 제일 좋았던 건 서울 소방서에 차려진 수사본부였어요. 원래는 정말 황량한 곳이었는데 문짝도 달고 칠을 했어요. 내부를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조명으로 데이와 나이트를 구분했어요. 감독님이 그 부분에서 박수를 치더라고요. 고생했다고. 은주 집도 참 좋아하셨고요. 은주 집도 그 시대의 부잣집을 찾아야 했는데, 실제 그 느낌이 나는 집이 없었어요. 그래서 천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세트로 만들어 버렸죠.”
Q. 미술감독으로 생활을 하면서 어느 지점에서 보람을 느끼나.
A. “만들어지고 나면 그게 보람이다. 우리가 구상했던 것들이 재현되지 않나. 그 모든 작업 역시 즐거우니까 하는 것 같다. 힘은 들지만 촬영장에 있을 때 엔돌핀이 돌고 상상력이 풍성해져요. 영화를 보면 열광한다고 할까? 하하.”
Q. 영화를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항상 이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한다. 나의 최종 모델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같은 종합영화 제작사를 꾸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응집된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다. 한 10년 안으로는 하고 싶은데….(웃음)”
Q. 마지막으로 미술감독을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A. “모든 건 똑같은 것 같다. 어느 분야든지 성공은 뒤따르는 것이다. 물론, 돈을 떠날 수 없지만 정말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고, 그만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못하는 것 같은데 ‘5년은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충무로 때보다 환경이 좋아졌으니, 그 환경에서 더욱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김진선 기자, 김성현 기자, 최윤나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