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대중문화부] ‘가요톱텐’부터 이어진 국내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온전한 정통성을 갖기 어렵다. 국내 음반 산업의 한 축인 고속도로 메들리 음반이 순위 집계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음반 산업이 호황일 때나 불황일 때도 고속도로에서 판매하는 트로트 메들리 카세트테이프 및 CD는 변함없이 사랑 받고 있다. 한 때 ‘메들리 4대천왕’이라 불렸던 가수들이 있었다. 김용림, 김난영, 신웅 그리고 진성. 긴 무명의 시절, 짭짤했던 메들리 가수를 거쳐 ‘안동역에서’로 늦깎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진성을 경기도 고양시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무명 생활을 하면서도 금전적 고통을 안 받았던 게 고속도로 메들리 장르가 있잖아요. 메들리 음반이 너무 잘 팔려서 돈 때문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100만 장 이상이 팔려서 반야월 선생님이 회장으로 계신 단체에서 상도 받고 그랬으니까요.”
가수에게는 자신의 곡으로 사랑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가수 생활 40년이 다 되어가는 진성 역시 메들리 음반으로 풍요를 누렸지만 그는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자신의 히트곡 없이는 그저 무명가수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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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트로트코리아 제공 |
“무명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한 무거운 짐이 누르고 있었던 거죠. 그런 세월을 보내면서 내 히트곡을 갖고 싶다는 소원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긴 노력 끝에 그 소원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최근 그의 ‘안동역에서’가 인기 상승세를 탔다. 지난해 이 곡이 폭발적 인기를 누리면서 2014 올해의 트로트 우수상, MBC 뮤직파워, 연예협회 올해의 트로트상, 작가협회 올해의 트로트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제가 사실은 호남 사람인데, ‘안동역에서’가 히트하면서 안동역 앞에 노래비가 세워졌고, 경상도 홍보대사가 됐어요. 안동 명예시민까지 됐으니까 호남사람이지만 무거운 중량감을 안 가질 수가 없는 입장이죠.”
2014년을 대표하는 트로트곡으로 자리한 ‘안동역에서’는 싱어송 라이터 김병걸의 작품이다. 트로트계 저작권 순위 5위 안에 든다는 김병걸은 안동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안동역에서’를 만들었다.
“작곡가가 경북 예천 사람이에요. 대학도 안동에서 나왔으니 거의 안동 사람이죠. 그 양반이 대학 다니면서 돈이 없으니까 버스로 통학하고, 여자 친구를 안동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눈이 많이 왔던 모양이에요. 차도 끊기고 돈도 없고 해서 눈이 무릎까지 쌓일 때까지 기다렸는데 ‘이 여자가 내가 돈이 없어서 안 오나?’하는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됐고 그 후에 헤어졌답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곡이어서 그런지 더 많은 공감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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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트로트코리아 제공 |
진성은 10대 어린 시절부터 유랑극단을 따라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25년을 캬바레나 성인나이트에서 노래하며 무명시절을 보냈고, 1992년이 되어서야 ‘님의 등불’이라는 자신의 곡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어릴 때 남도 창을 했던 진성은 창의 장점과 가요의 장점을 믹스하며 어필했고, 이후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트로트 장르에서 꾸준히 팬을 확보해 나갔다. “‘내가 바보야’가 2001년인가 나와서 사랑 받았고, ‘태클을 걸지마’가 한 9년 됐죠. 제가 만든 곡인데 이 곡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가수 진성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인보다 높은 하이톤이다. “공연장에서 반주기 엔지니어가 이미자 선배님 노래를 하는데 여자 키를 안 바꾼 거예요. 제가 그냥 여자 키로 불렀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창을 했었기 때문에 갖게 된 저한테는 굉장히 큰 장점이죠. 그런 장점이 노래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가수 진성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마음가짐이다. 힘든 무명시절을 겪으면서도 그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어요. 양로원, 교도소 이런 데를 다니면 돌아설 대 마음도 뿌듯하고 다녀온 한 달 동안은 축복을 받은 듯한 느낌으로 살 수 있었죠.” 성공을 만들어 낸 지금 그에게 생긴 목표는 다른 가수들과 많이 다르다. “나훈아, 조용필처럼 슈퍼스타가 되는 걸 꿈꿔본 적은 없어요. 자기의 자리는 자기가 가장 잘 아니까요. 돈을 벌면 사회의 어두운 곳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그래서 사회사업 쪽으로 일을 추진해가고 있어요. 돈을 남한테 빌려서 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 제가 번 돈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더 잘 돼야죠.”
긴 시간 사랑 받는 트로트의 특성상 ‘안동역에서’의 인기는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안동역에서’가 2년 2개월 됐
무명은 낙인이 아니다. 기회를 잡으면 언제든 유명해질 수 있으니까.
[글 : 이용지 (대중음악평론가, 코머스뮤직 www.comusmusic.com) / 제휴사 : 트로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