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수남 役
"순수한 유아처럼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수남과 비슷하게 한 사람에게 헌신, 주위에서는 바보래요"
"박찬욱 감독님은 나의 멘토"
![]() |
"박찬욱 감독님이 저를 추천하셨는데, 안국진 감독님이 '정현씨 바쁠 걸요? 안 될 것 같다'고 했대요. 그러자 박 감독님이 '아닌데? 정현이 놀고 있는데? 빨리 연락하라'고 하셨대요. 그렇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시작됐죠.(웃음)"
배우 이정현(35)에게 박찬욱 감독은 고마운 존재다. 일종의 멘토다. 박 감독은 동생 박찬경 감독과 함께 연출한 단편 '파란만장'의 여주인공으로 이정현을 기용했다. 단편부문 금공상을 따낸 이 작품도 화제가 됐고, 이정현도 큰 관심을 받았다.
'꽃잎' 이후 영화로는 이렇다 할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던 그는 '파란만장' 이후 영화 '범죄소년'과 '명량'으로 인사할 수 있게 됐다. "20대 때 연기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 대부분 귀신 역할, 공포영화만 들어왔었다. 그때가 연기적으로는 슬럼프였다"는 이정현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청순하거나 밝은 인물을 맡아 연기적인 뭔가를 해소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사람이다 보니 한국 작품이 항상 그리웠다. 그걸 풀어준 계기가 '파란만장'"이라고 회상했다.
"박찬욱 감독님이 깨우쳐주셨죠. '너 배우인데 왜 연기 안 하느냐'는 말이 울컥 와 닿았어요. 자품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늘 감독님께 물어 봐요. 감독님이 안부 문자를 하면 답이 다음날 오는데 일과 관련해 연락하며 빨리 전화를 하시더라고요. 시나리오 빨리 보내라고요. '파란만장' 하기 전에는 감독님을 몰랐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와서 단편이지만 같이 해보자는 말씀을 하셨을 때 너무 좋아 막 뛰어다녔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웃음)"
13일 개봉한 안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이하 앨리스)도 따지고 보면 박 감독의 입김(?)이 들어간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정현에게 이 영화가 나쁜 작품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꽃잎'에서 멈춘 그의 대표작이 바뀔 것 같은 영화다. 그는 순수하면서도 광기 어린, 전혀 다른 표정과 말투 행동으로 '앨리스'의 수남을 완벽히 표현했다.
'앨리스'는 청각장애인 남자와 결혼해 평범한 행복을 바라던 수남의 이야기.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빚을 청산하기 위해 신문 배달, 전단 돌리기, 음식점 주방 보조로 일하지만 더 팍팍한 삶이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와 참 닮았다. 대단한 걸 바라지 않지만, 그것마저도 힘든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절묘하게 비틀었다.
![]() |
이정현은 "이런 작품은 없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캐릭터에 공을 들였다. 그는 "수남이 유아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한 남자를 위해서 뭔가를 헌신하는 여자는 더 순수해야 했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다는 생각"이었다. 성인의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 수남의 글씨체는 그 발현이다. "수남의 성격을 대변한다고 봤어요. 사실 감독님은 그 부분에 대해 별말씀은 안 하셨거든요? 하지만 제가 4살짜리 조카가 한글 쓰는 걸 보고 따라서 연습했던 거예요."
명함 날리기는 한 방송 프로그램의 '생활의 달인'을 보고 연습했다. 청소는 원래 쓱싹쓱싹 잘한단다. 가장 어려웠던 건 스쿠터를 타는 거였다. 두 발 자전거를 못 탔던 그는 촬영 3일 전에야 배웠고, 현장에서 가까스로 스쿠터 장면을 소화해냈다.
이정현은 한 남자에게 열과 성을 다하는 건 수남과 비슷하다고 했다. "저도 사랑하게 되면 한 남자밖에 몰라요"라며 웃는 이정현. "한 번 만나면 오래 사귀거든요. 주위에서는 바보 같다고 그러죠. 그렇게 사랑 받으려면 남자가 호감을 보이는 과정이 힘들겠다고요? 그래도 열 번 찍으면 다들 넘어가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런데…. 하하. 멋진 분을 만나면 제가 먼저 대시하기도 해요. "
![]() |
이정현은 '여성 영화'가 잘 되길 바랐다. "여자 영화는 상업성이 많이 떨어지니 많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남자들은 조연으로 나오는
jeigu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