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권인경 인턴기자]
1980년대 군(軍) 의문사 사건으로 지난 31년 동안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두고 논란이 계속됐던 ‘허원근(당시 21세) 일병 사망 사건이 결국 미제(未濟)로 남게 됐다.
대법원 2부는 10일 허 일병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허 일병의 사인(死因)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규명할 수 없다”면서도 군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1984년 4월 2일 육군 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 내무반 인근 폐유류고 뒤에서 오른쪽과 왼쪽 가슴, 머리 등에 세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허 일병 사건은 31년 만에 대법원 판결로 종결됐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허 일병이 타살됐다는 점에 부합하는 듯 한 증거들과 이를 의심하게 하는 정황들로만으로는 허 일병 소속 부대원 등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여럽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렇다고 허 일병이 폐유류 창고에서 스스로 소총 3발을 발사해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면서 “사고 당시에만 수집할 수 있는 현장 단서에 대한 조사와 부검 등이 철저하고 면밀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허 일병 사망 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허 일병 사건은 타살인지, 자살인지를 두고 30년 넘게 논란이 됐고, 국가기관이 하나의 진실을 두고 정면 대결하는 진실게임까지 벌어졌다.
군 수사 당국은 사건 초기와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타살 여부에 대해 조사와 재조사를 거듭해 자살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2002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숨진 날 새벽 어느 중사가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다 쏜 오발탄에 허 일병이 맞았고, 이를 자살로 은폐하기 위해 아침에 누군가 허 일병 시신을 옮겨 놓은 뒤 2발을 더 쏘았다”며 타살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같은 해 국방부는 특별조사단을 꾸려 재조사한 뒤 자살이라고 발표하면서 국가기관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허 일병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하지만 2013년 2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M16 소총으로 좌·우측 가슴에 각 한 발씩 발사했으나 바로 사망하지 않자 비탈진 곳에 누워 왼손으로 M16 소총의 총구를 지지한 채 오른쪽 눈썹 위에 한 발을 더 발사해 자살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