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최윤나 기자] 과거,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곳에서 직접적으로 몸을 던져 싸우는 사람들 중에 뚜렷한 전투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아들인 사람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죽기 살기로 싸울 뿐이었다.
영화 ‘서부전선’은 농사짓다 끌려온 남한군 남복(설경구 분)과 탱크는 책으로만 배운 북한군 영광(여진구 분)이 전쟁의 운명이 달린 비밀문서를 두고 위험천만한 대결을 벌이는 내용을 그렸다. 이들도 역시 전투에 별다른 뜻이 없었던 남자였다. 그저 ‘싸워야 한다’는 목적의식만 갖고 전쟁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영광과 남복은 각각 예상치 못한 공격에 아수라장이 된 상태에서도, 비밀문서를 전달하라는 명령을 달성하고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가고자 고군분투한다. 그 와중에 마주하게 된 영광과 남복은 서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함과 동시에, 끝까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조금씩 왠지 모를 동지애를 느낀다.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었던 그들의 생각이 무사히 돌아가야 한다는 목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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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도 뽑지 않은 채 수류탄을 던지는 영광, 잃어버린 비밀문서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남복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웃음의 뒷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기본적인 전투에 대한 지식도 없이 가족을 떠나 싸워야만 했던 그들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서부전선’의 천성일 감독은 영화의 배경을 휴전 3일을 앞둔 시점으로 설정한 이유를 “한국전쟁 중 갑자기 휴전 문서가 발효됐다. 위에서는 휴전협정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아래 병사들에게는 비밀로 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가장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전혀 모르는 병사들이 맹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면서 느껴지는 씁쓸함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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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정에 여진구과 설경구는 아마 가장 최적화된 배우들이 아니었나 싶다. 극 중 영광과 비슷한 나잇대인 여진구는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소년의 모습이 묻어있는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했다. 뿐만 아니라 설경구는 ‘실미도’에서 보여줬던 강한 군인의 이미지를 벗고 정 많으면서도 가끔은 바보 같은 형의 모습으로 변신해 관객에게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영화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영광과 남복이 6.25 당시 참전했던 대부분의 병사들이 이유도 자세히 모른 채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에 뛰어들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서부전선’의 장면 전개가 웃음과 슬픔으로 계속해서 전환된다는 점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 두 가지 감정이 결국에는 전쟁의 씁쓸함을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오는 24일 개봉.
최윤나 기자 refuge_cosmo@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