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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만 안 들었지 전장에 나가는 것과 비교해도 되지 않을까. 팍팍한 현실에서 제 몸 하나, 또 사랑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장이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것 말이다.
우리 시대 가장의 어깨는 무거워 보인다.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아버지가 아니라면 그 어깨는 더 굽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아버지만 지칭하는 건 아니다. 현대는 한부모 가정, 소년·소녀 가장도 꽤 많다.
영화 '아버지의 초상'(감독 스테판 브리제)은 그 가장의 희로애락을 진정성 넘치게 담아냈다. 프랑스 영화지만 한국의 현 실정과 비교해도 그리 차이가 나 보이진 않는다. 씁쓸함이 밀려온다.
회사의 부당한 구조 조정으로 해고당한 가장 티에리(뱅상 랭동)는 새로운 일을 찾아 헤맨다. 쉽진 않다. 집 대출 이자도, 장애인인 아들의 학비도 제대로 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티에리. 오랫동안 살았던 집까지 내놓아야 할 상황이다.
티에리는 자신을 낮추고 굴욕이라고 할 수 있는 면접까지 봐가며 가까스로 대형 마트 보안요원으로 취직한다. 기쁨은 아주 잠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과 맞닥뜨리고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감시카메라를 통해 손님들과 매장 직원들의 부정을 감시하는 게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취조하고 쿠폰을 몰래 챙긴 직원을 압박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하는 남자.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기 싫지만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춤을 추는 취미 생활을 즐기고, 가정에서 아내-아이와 함께 식사를 즐기는 모습은 소소하지만 티에리에게 적잖은 행복이다. 흔히 생각하는 대단하고 엄청난 행복은 아니더라도 티에리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기에 충분한 장면들이다.
몇 년, 몇십 년 후 자신 또는 주위의 모습이 오버랩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뱅상 랭동의 주름이 더 깊어 보인다. 그는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따냈다.
원제는 '시장의 법칙'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얼굴 단면이 담담하게 관객을 자극한다. 92분. 12세 이상 관람가. 28일 개봉.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