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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알리샤 비칸데르는 "한국의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좋다"고 했었다. 6년 전, 스웨덴의 무명배우였던 그는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제 중 한 곳인 부산을 찾은 소감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시간이 흘러 비칸데르는 할리우드에서 주목하는 배우가 됐다. '더 셰프' '제이슨 본' '엑스 마키나' 등을 찍었다. '대니쉬걸'에서도 에디 레드메인만큼 빛나는 존재감을 드러냈고, 영예롭다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까지 올랐다.
동양의 낯선 나라에도 이런 대단한 영화제가 존재한다는 감탄 어린 시선에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 그가 다시 왔을 때, 한국에 대한 소감을 물으면 부산영화제가 당한 이야기를 할까 봐 걱정된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무명배우는 성장했는데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간 부산영화제는 퇴보한 듯하다. 독재시대도 아닌데 대놓고 관이 영화제에 개입해 이래라저래라 지시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로 촉발된 논란이다. 자극적인 시선으로 담긴 했지만 이 다큐는 하나의 영화로 바라보면 큰 문제가 없었는데 부산시는 앞장서 '충성'했다. '세월호' 관련이라는 이야기에 "상영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다. 영화제 측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이유로 거절했다. 이후 부산시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했고,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이유로 이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영화제 집행위를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2년이 지나 논란 촉발의 당사자인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 독립성 원칙을 입에 담으며 "당연직인 조직위원장을 사퇴하고 민간에 넘기겠다"고 했다. 이 집행위원장과 동반 퇴장이라는 셈법을 이용하기로 했다.
'영화제 길들이기'라는 시선이 파다했다. 창피한 일이다. 앞서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을 비롯해 112명의 해외 영화인들이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공개서안을 보내 우려를 표했다. 이에 앞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등 국내에서 열리는 5개 국제영화제도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96년 출범해 20년을 공들여 키운 탑이 일순간 무너진 듯한 기분이라는 영화인들이 많다.
기자들은 외국의 배우들이 오면 으레 방한 소감을 묻는다. 뻔한 답이 돌아오지만 긴장감을 푸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제 더 긴장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외국의 배우가 이 갈등에 관해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한 사람 탓을 해도 될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창피하다.
언론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배우 출신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더 난감할 듯하다. 지난해부터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함께 공동으로 영화제를 이끈 그는 세계 영화제 역사상 유례없는 일로 위로(?)를 들어야 할 처지다.
과거 인터뷰에서 비칸데르는 "한국영화도 유럽에서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이제 한국영화는 창작자들에 의해 유럽 등 외국에서도 나름대로 인정받고 호응도 얻고 있다. 영화제도 외국에 한국영화를 알리는
화가로서의 열망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남편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아내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대니쉬걸' 속 비칸데르를 보고 과거 기억 한토막을 꺼내 이 갈등을 바라 보니 더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