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훈 기자] 가수 윤수일의 원동력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서는 윤수일의 40주년 공연 ‘2016 윤수일 밴드 40주년 콘서트’ 쇼케이스가 열렸다.
이날 윤수일은 “‘세월이 살 같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시간이다. 벌써 데뷔한지 40년이 지났다. 1973년, 가방하나 둘러매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 당시는 70년대 초반이기 때문에 그룹들의 전성시대였다. 기라성 같은 국내 그룹 중에 한 곳을 선택해서 제일 말단으로 입사했다”며 40년 음악인생을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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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윤수일과 솜사탕 멤버들이 ‘사랑만은 않겠어요’ 반주를 안 하겠다고 했었다. 난 그 노래를 좋아했다. 트로트풍이라는 약점을 잡고 날 설득하려 했다. 그래서 그 그룹을 나와 윤수일밴드를 만들었다”고 당시의 비화를 소개했다.
82년 발표한 윤수일의 ‘아파트’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제2의 고향’ ‘황홀한 고백’ 등 노래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자신만의 음악적 성향을 확고히 다졌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했던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전국 노래자랑’에 출연한 라미란이 ‘황홀한 고백’을 부르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것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윤수일은 “라미란의 연기는 정말 재밌게 봤다. 뛰어난 연기자라고 생각했다”며 “‘황홀한 고백’은 한국 가요계의 최초 군무다. 그 당시 방송가의 최고의 안무가를 찾아가서 노래를 들려주고 이걸 군무로 하고 싶다고 청했다. 그때 만들어진 거다. 내가 대한민국 최초의 군무다”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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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가요라고 불리는 ‘아파트’ ‘황홀한 고백’과 같은 히트곡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노래를 계속해 만들어야 했던 그는 “우리들은 음악을 평생하고 앞으로도 할 사람이다. 음악적 슬럼프가 왔을 때 가장 괴롭다. 국민가요가 나오고 나면 그다음에 뭘 해야 더 좋은 음악과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지가 괴롭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윤수일이 가수가 된 후 강산도 네 번 변했다. 하지만 윤수일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오는 4월25일 ‘2016 윤수일밴드 40주년 콘서트’를 개최해 팬들과 호흡할 예정이다.
유지훈 기자 ji-hoon@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