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이 영화 ‘아수라’ 시나리오를 보고 “주인공스럽지 않은 주인공에 당황했다”며 “텍스트 뒤에 숨겨진 걸 찾는 게 고충이었다”고 밝혔다.
촬영 내내 비리 형사 ‘한도경’에 대한 고민으로 머릿 속이 가득찼던 그는 “40대인 나만의 가치를 규정짓고 연기할 수 없는 거였다. ‘50대 감독이 투영하려고 하는 게 뭘까’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고 돌아봤다.
그것은 지독한 스트레스였고, 피로감이었다. 답을 원하지도, 질문 하지도 않았다.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보여주면 피드백이 올 거라 생각했다.
“첫 편집본을 봤을 땐 정말 충격이었죠. 뭐로 한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요. 한 번은 ‘형, 나 힘들어서 죽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감독님은 속으로 굉장히 기뻐하셨대요. 다른 사람들은 현장에서 다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저 혼자만 한도경에 빠져 있느라 극심한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죠.”
그래도 ‘아수라’는 시나리오 한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었다. 절친한 김성수 감독이 오랫동안 고민해온 작품이란 얘길 듣고 “형만 믿고 가겠다”고 했다. 영화 ‘비트’(1997)를 시작으로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15년 지난 후 ‘아수라’까지 벌써 4작품째 인연을 쌓아오고 있다.
누구라고 꼽을 수 없을 정도의 쟁쟁한 배우들은 그에게 천군만마나 다름 없었다. 황정민 곽도원 정만식 주지훈이 합류한다는 얘길 듣고 “기뻤고 고마웠다”. “팽팽한 긴장감? 그런 건 의식 안했어요. 그저 한바탕 놀아볼 수 있겠구나 싶었죠.”
핏빛 누아르 ‘아수라’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액션영화다. 선과 악, 권선징악, 정의구현 따위는 없다. 먹이사슬처럼 얽혀 파멸을 향해 함께 달려들고, 지옥같은 세상에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정우성은 극중 아픈 아내의 병원비를 벌려고 악의 구렁텅이 안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물 ‘한도경’으로 분했다.
잘 생긴 얼굴은 버렸고, 욕설을 입에 달고산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한 ‘한도경’의 얼굴엔 삶에 찌든 40대 중년 남자의 피로감이 녹아있다.
하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 만족도가 크다. 응축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그래선지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 주변 반응은 뜨거웠다. VIP 시사 후 이정재가 “부럽다”는 소감을 남긴 것을 시작으로 “10년 후에 회자될 작품” “‘올드보이’ 이후에 최고의 영화가 나온 것 같다”는 찬사를 관계자들에게 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곡성’의 나홍진 감독은 ‘프레임 안에 모든 게 스승이다’는 문자를 CJ팀에 보냈다고 들었다”며 “그 얘길 듣고 ‘와우’ 했다”고 덧붙였다.
“‘한도경’을 표현하는 게 고단하기도 했지만 열정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 작업이었죠. 후유증이 클 뻔 했
‘아수라’는 28일 개봉 첫날 47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2일 만에 73만 5,269명, 30일 100만 돌파가 예상된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