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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를 틀린다거나 튀는 실수는 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비주얼에 풍부한 감정선도 좋았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자연스러웠고 펑펑 쏟아내는 눈물 연기는 프로답다. 헌데 대사를 읊으면 읊을수록 몰입은 깨진다. 어색한 톤과 불분명한 발음, 부족한 발성 탓이다.
배우 문근영이 데뷔작인 ‘클로저’ 이후 6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불멸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을 통해서다.
작품은 20-30대 젊은층을 타깃으로 고전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셰익스피어 원작대로 원수 집안인 몬태규가 로미오와 캐플릿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았고 어렵지만 아름다운 대사들을 변형 없이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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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전적 대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대 효과나 각종 장치는 과감히 줄였다. 단조롭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지만, 두 연기파 배우에 대한 강한 신뢰 덕분에 가능한 선택.
문근영 박정민은 젊은 층에겐 다소 낯선, 자칫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문학적 대사들을 실수 없이 술술 소화해낸다. 케미 또한 사랑스럽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작품은 크게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 달콤한 1막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처절한 2막으로 이어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허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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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의 경우는 적잖게 아쉽다. 그녀의 동안 얼굴과 사슴 같은 눈망울, 아담한 체구는 줄리엣의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지만 근본적으로 무대 연기를 위한 기본기가 부족해 작품 전반에서 튄다.
대극장이 아닌 500여석의 중극장인데다 마이크를 찼음에도 불구하고 (문근영의) 목소리의 힘은 부족하다. 어색한 톤도 문제지만 변주가 자유롭지 못해 때때로 감정 연기마저 어색하게 느껴지게 한다.
건강 관리가 안 됐는지 목 상태도 좋지 못해 소리치는 장면이 많은 2막에선 특히나 더 도드라진다. 발음이 뭉개져 들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사가 많고 게다가 그 기능이 중요한 작품인지라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믿고 보는 배우 문근영을 가까운 거리에서, 동시에 마음껏 그녀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기쁨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나섰지만, 막이 내리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무대 연기가 그녀의 주전공은 아니라지만, 그래서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문근영의 ‘줄리엣’은 분명 반갑고 흥미로웠고 장점도 많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들이 이 모든 걸 무색하게 만들었다. 기본기, 결코 간과
다행히 조연들의 활약은 빛난다. 손병호(로렌스 신부), 서이숙, 배해선(이상 유모 역), 김호영(머큐쇼 역) 등 영화, 뮤지컬, 드라마, 연극 무대를 넘나드는 실력파 배우들 덕분에 작품 곳곳의 단점들은 상당 부분 커버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내년 1월 1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