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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과 그로부터, 즉 ‘그 시간 이후의 시간’이 혼재돼있다. 마치 단 하루만이 아닐 것 같은 길고 긴 그 하루가, 뻔뻔하면서도 그럴 법도 하게 빠르고도 또 느리게, 강렬하고도 허무하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묘사된다. 모두가 얽혀버려 요란법석 했던, 누군가에겐 진심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치욕이었고 누군가에겐 추억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기억조차 나질 않는, 같지만 전혀 다른 바로 ‘그 시간’. 감독은 그 시간 이후 다시 바라본 ‘그 시간’을 통해 변화무쌍하며 실체가 없는 실체, 바로 ‘시간’을 다룬다.
영화는 이른 새벽,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남편을 추궁하는 아내의 투샷으로 시작된다. 아내는 이른 출근, 부쩍 마른 남편을 보며 “여자 생겼지? 좋아하는 여자 생겼지?”라고 캐묻는다. 남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충 넘어가려 하지만 여자의 직감은 매번 틀린 법이 없다.
아내의 날카로운 공격을 어렵사리 피해 무사히 밖으로 빠져 나온 주인공 봉완(권해효). 홍상수 감독은 출근하는 그의 현재와 한 때 불륜 사이었던 여직원 창숙(김새벽)과 함께 했던 과거를 빠르고 섬세하게 교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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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는 단순한 단면들이 모여 입체적으로 완성된 앙큼한 이야기다. 홍 감독은 불륜에 맞닥뜨린 부부를 중심으로 불륜 상대인 창숙, 또 다른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아름을 통해 발칙하고도 뻔뻔하면서도 씁쓸하게 ‘그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불륜’ 소재를 요리하는 과정에는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불륜 스캔들을 둘러싼 각종 이슈들이 교묘하게 녹아 있고, 또 분리돼있다. 영리한 동시에 솔직하고, 로맨틱한 동시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영화 속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혼합돼있고, 불편하면서도 유쾌한 감성의 미로가 부드럽게 엉켜있다.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저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그들의 ‘그 시간’을 통해 황량함과 동시에 해방감을, 씁쓸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불행 중 다행으로, 보편적인 상식이자 단순하고 쉬운 결말로 귀결되지만 어쩐지 홍 감독의 속마음과는 무관한 듯하다. 감독은 똑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도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저마다 다른 의미로 남게 되는, 결코 단정 지을 수 없고 규정지을 수 없는, 살아 숨 쉬는 ‘시간’의 잔혹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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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쉬운 듯 어렵다. 불편한 듯 유쾌하고 비극적이지만 현실적이다. 복잡하게 시작해 단순하게 끝난다. 홍 감
한편, 김민희와 홍상수가 함께 한 ’그 후’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91분. 청소년 관람불가. 7월6일 개봉 예정.
kiki2022@mk.co.kr